오펜하이머: 과학이 아닌 인간에 대한 영화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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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폭탄 개발의 역사적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지만,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놀란 감독은 천재 과학자의 머릿속과 그를 둘러싼 욕망, 그리고 시대의 권력 구조를 해부하듯 보여준다.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는 화면, 시계 초침처럼 조여 오는 편집, 정교하게 배치된 강렬한 대사들은 우리를 오펜하이머가 겪었던 사건들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이 영화의 매력은 훌륭한 연기와 연출, 뛰어난 미장센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도 큰 장점은 과학사의 한 장면을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로스앨러모스(Los Alamos)’의 과학자들에게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다양한 개성의 연구자들을 한 곳에 모아 사기를 다잡고, 각종 정치적·기술적 의혹과 나치에게 뒤지고 있다는 부담감을 이겨 내며,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핵무기를 완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가 이룬 업적에 의혹과 음모론으로 오명을 씌우고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창조는 어렵지만 비판은 쉽다. 심지어 우리 인간은 신마저 비판하지 않는가?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인생의 절정을 경험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절정의 순간부터 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오만해진 그는,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자신의 존재 때문에 초라해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고, 그의 파멸을 원하는 사람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성공은 방패가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조준점이 되기도 한다. 성공에 취해 시야가 좁아지고 냉철함을 잃는 순간, 파멸의 씨앗이 뿌려지곤 한다.


말년에 오펜하이머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오랜 동료와 친구들이었다. 그와 가까운 사이였던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관계였기에 이해관계가 깊이 얽혀 있었고, 오펜하이머가 빛이 날수록 그들을 가리는 그늘도 짙어졌다. 오히려 그를 옹호하고 지켜준 사람들은 멀리, 예기치 않은 곳에 있었다. 가까운 관계라고 해서 그들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며 소홀히 대하면 안 되며, 멀리 있는 사이라고 해서 정성을 다하지 않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진짜 친구로 밝혀질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기의 천재였던 오펜하이머였지만,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까닭에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영화는 물리학보다 어려운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p.s. 걸작은 여러 차례 봐도 질리지 않고 언제 봐도 신선하다. 땡큐, 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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