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길,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찾다

by 셔니
7070e2b9-473e-4f73-9ed9-d22b3a061401.jpg


근대 이전, 도자기는 중국의 대표적 수출품이었다. 도자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가 ‘차이나(China)’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당나라 시대에 중국 도자기는 동남아와 중동, 유럽을 넘어 동아프리카에까지 퍼졌다. 이후 유럽 귀족층 사이에서 찻잔과 식기, 장식품으로 소비되며 로코코 문화의 상징적 요소가 되었고, 원나라 시대에는 대항해시대와 맞물려 멕시코와 페루에까지 확산됐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고려청자는 독자적 존재감을 유지했다. 중국 도자기 패권이 절정이던 11~14세기, 고려는 ‘고려비색’이라 불린 은은한 빛과 상감(象嵌)이라는 독창적 기법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 결과 중국 본토에서도 고려 도자기는 고급 사치품으로 별도 취급되었다. 양(量)으로는 뒤질지 몰라도, 질(質)과 미(美)로는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도자기 역사는 오늘날 우리 제조업의 현실과 묘하게 겹친다.


중국은 이미 한나라 때부터 도자기 원료, 제작, 유통이 집적된 ‘가마(窯) 클러스터’를 곳곳에 형성했다. 정교한 분업과 표준 규격을 토대로 균일한 품질과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고, 여기에 황실이 구축한 조공 무역 체제가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했다.


반면 고려는 중국과 물량으로 정면 충돌을 피하고 프리미엄을 추구했다. 공정을 고도화하고 귀족과 사찰의 주문에 응하는 소량/고급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차별화된 기술과 희소성으로 틈새시장을 노렸다.


지금 한국 제조업은 중국의 도약 앞에 위기를 맞고 있다. 규모와 가격 경쟁에서 이미 밀린 데다, 이제 품질마저 뒤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력 제조업은 하나같이 경고음을 내고 있고, 일각에서는 “이제 제조업으로는 답이 없다”며 문화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는 문화산업만으로 먹고 살기엔 인구가 많고, 계속 트렌드를 주도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애초에 ‘케데헌’ 열풍의 진정한 승자가 한국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솔직히 말해, 한류보다 더 대단한 건 넷플릭스 아닌가? 콘텐츠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지만, 플랫폼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 제조업은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북한과 휴전 중),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인 나라(자연의 축복을 받은 나라는 1차산업, 조상의 은덕을 입은 나라는 3차산업으로 먹고 살 수 있다. 우리는 둘 다 아니다), 고급 제조업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다(해외와 일해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절대 돈만 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최근 일부에서는 “엔진을 갈아 끼워야 할 때”라는 명분으로, 어렵게 키운 주력 제조업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자고 한다. 물론 때로는 포기가 미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말고는 답이 없는 걸까? 과거 조상들이 그러했듯, 중국의 물량 공세를 넘어서 고려청자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는 걸까.


art_17320718865896_00f7db.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격은 원가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