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생존과 안보, 나아가 팽창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다르게 접근해 왔다. 오늘날 미국과 그 우방들이 대륙 제국에 뿌리를 둔 두 나라, 즉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제대로 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도 지정학 문제가 크다고 본다. - 대륙 논리 -
대륙세력은 본능적으로 국가의 심장부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완충지대를 갈구하게 된다.
러시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과 1941년 히틀러의 침공은 러시아의 전략적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우크라이나 장악을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인 동시에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중국 또한 대만을 같은 방식으로 본다. 베이징이 보기에 대만은 단순한 섬이 아니다. 대만은 상하이, 선전, 광저우 같은 경제적 심장부를 겨누는 단도와 같다. 대만이라는 문이 걸어 잠기면 중국이 대양으로 나아가는 길도 차단된다.
처음으로 “자연적 국경”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건 프랑스의 루이 14세였다(프랑스의 영토가 강, 바다, 산맥과 같은 자연의 경계망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 속 등장한 대륙세력은 국력과 관계없이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고려의 요동에 대한 집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건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평화적인 나라라도 영토가 외부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가령 일본이 남해안에 작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언제든 일본군이 상륙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기분이 어떨까? 이웃이 아무리 친절해도 현관문을 열려 있는데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대륙국가들은 문제를 제로섬 방식으로 풀려고 시도하기 쉽다. 자기가 먼저 이웃을 제압하지 않으면, 결국엔 이웃에게 자기가 제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어렵다. - 해양 논리 -
반대로 해양 세력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바다라는 천혜의 우군 덕분에 완충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덜하다. 그 대신 부를 축적하고(해군은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동맹을 활용하는 걸 선호하게 된다(바다 건너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건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
물론 해양세력이 대륙세력보다 특별히 고결하거나 평화를 사랑했던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대륙세력과 달리 해양세력은 영토의 항구적 점령에 집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딱히 윤리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국을 상대할 때 무력보다는 교역과 외교를 결합한 유연한 방식을 취했다. 약소국을 착취할 때에도 직접 지배보단 간접 지배를 선호했다.
해양세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이다. 미국은 유럽 제국들이 남기고 떠난 식민지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역(WTO, World Bank), 국제규범(UN), 동맹(NATO, 한미동맹 등)으로 제국을 형성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유연성 때문에 해양세력은 종종 예측하기가 어렵다. 영국은 시종일관 적과 아군을 바꿔가며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그 뒤를 이은 미국 역시 고립주의와 자유질서의 수호자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비교적 예측하기 쉽다. 세계지도가 바뀌지 않는 한 러시아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에 집착할 것이고, 중국 지도자들은 대만, 만주, 티베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정치제도나 문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지리, 좀더 정확히 말하면 생존의 문제다. - 결론 -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분열은 앞으로도 세계 정치의 핵심을 규정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집착, 미국의 변덕스러운 외교 정책을 이해하려면 저변에 깔려 있는 지정학적 숙명을 읽어야 한다. 복잡한 외교의 방정식은 몇몇 리더의 개성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당장 푸틴이 제거되고 민주적 지도자로 대체된다고 해도 러시아는 결코 적대적인 우크라이나와 대치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앞으로도 고립주의와 개입주의를 반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