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프랑스 총리가 직접 한 말이다.
IMF를 겪어본 입장에서 프랑스가 IMF의 환자가 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나는 한국인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1997년에 IMF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자 EU의 리더, 핵보유국이자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프랑스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그동안 남을 구제하는 역할을 해왔던 프랑스가 어쩌다 구제가 필요한 신세에 처한 걸까?
현재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약 3조 3천억 유로 규모인데 이는 프랑스 GDP 대비 114%에 달하는 규모다. 더 큰 문제는 프랑스가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에 갈수록 냉담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버는 돈보다 쓸 돈이 많은데 빌려줄 사람이 없으니 IMF 이야기가 나오는 것.
프랑스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요인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갈수록 쓸 돈이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복지비용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국방, 에너지 믹스, 인공지능 등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프랑스의 공공지출 비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연금 지출에만 전체 예산의 15%가 들어간다.
둘째, 수입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존 산업들의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한편 고부가가치 신사업은 미국과 중국이 독식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미 세계적으로 조세 부담률이 높은 나라지만 1974년 이후로 단 한 번도 재정 흑자를 달성하지 못했다. 단순히 세금을 더 매긴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셋째, 과거의 유산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 한국에선 덜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는 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상당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CFA 프랑존’ 체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데, 이 체제에 속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환보유액의 50%를 프랑스에 예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프랑스는 투자자로나 평화의 수호자로나 과거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그로 인해 생긴 공백을 신흥국, 특히 중국이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정말로 프랑스가 IMF 지원을 요청하게 될까? 이는 자주성을 자부해 온 프랑스에게 굴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동안 IMF의 지원을 받은 나라는 주로 개발도상국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IMF는 서구식 시장경제 체제를 이식하는 조건부로 자금을 제공했다. 만일 IMF의 표준 패키지 - 민영화, 조세 인상과 정부 지출 삭감, 부실산업 정리 – 를 받아들인다면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자신들이 뽑은 정치인이 시행하는 긴축정책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랑스인들이 외부 세력이 요구하는 긴축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대다수는 프랑스가 IMF에게 손을 벌리기 보다는 EU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선호할 거라고 본다. EU 멤버들이 합의를 도출할 수만 있다면 과거 그리스를 구제했던 것처럼 IMF(정확히는 미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EU라고 해서 무조건 돈을 융통해 줄리 만무하며,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 다들 사정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더욱 심각한 건 프랑스가 직면한 문제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이 도와줘서 급한 불을 끈다고 해도 프랑스의 구조적인 적자 구조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소위 IMF의 모범답안도 프랑스에게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인 프랑스에게 이제 와서 자본주의의 ABC를 가르쳐주겠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프랑스의 위기는 프랑스를 넘어 유로로 묶여 있는 유럽연합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프랑스의 이웃들은 IMF의 다음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각각 나름의 해결책을 들고 나올 것이며, 이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들이 아닌 새로운 지도자들이 지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이 반드시 합리적이고 상생적인 방향일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어려운 일이다. 부자 증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마법의 돈나무’ 논리는 잠깐 고통을 잊게 해줄 순 있겠지만 결국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고통스러운 긴축을 요구할 힘이 여소야대인 프랑스의 현정부에겐 부족하다. 공휴일을 이틀 줄이자고 했다가 거친 반발에 부딪친 게 최근의 일이다.
프랑스의 상황을 남의 집에 난 불정도로 치부해선 안된다. 프랑스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구조적인 문제, 정확히는 우리가 20세기에 누렸던 평온함에 대해 뒤늦게 날라온 청구서에 가깝다. 현존하는 선진국 가운데 이 원죄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