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대영제국은 인류 최초의 진정한 초강대국이자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다. 전성기 당시 영국이 세계 제조업에서 차지한 비중은 40%를 넘어섰다. 오늘날 중국이 전 세계 제조업의 약 25%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독일과 미국이 기술 혁신과 물량 공세를 무기로 추격하면서, 영국의 제조업 우위는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은 제조업 주도권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자 금융시장을 키워 세계 자본의 흐름을 장악하고, 식민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무역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말하자면 ‘수수료 경제’로 전환한 것이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패권 연장에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영국의 혁신 역량과 실물경제 전반을 약화시켰다. 금융에 의존한 제국 운영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낳았고, 인재들은 창업과 발명 대신 금융과 식민지 경영에 몰두했다. 한때 최첨단을 자랑하던 영국의 기술력은 20세기 초 화학·전기 혁명을 주도하지 못한 채 뒤처졌다. 식민지를 ‘강제 시장(Captive Market)’으로 삼아 유지되던 산업구조는 이러한 기술 쇠퇴를 더욱 가속화했다. “해군력만으로 수수료 경제를 지탱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결국 해군력조차 제조업 기반이 있어야 유지된다는 냉혹한 현실 앞에 무너져 내렸다.
수치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1870년 영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약 30%를 차지해 미국(23%), 독일(13%), 프랑스(10%)를 앞섰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에는 미국(30%), 독일(15%), 영국(14%), 프랑스(6%) 순으로 역전됐다. 영국이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추세는 전후 더 가속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인 1939년에는 미국(35%), 독일(16%), 영국(10%), 프랑스(5%)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쯤 되자 영국은 독일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없는 ‘열강 중 하나’로 전락했다. 실제 전쟁 상황에서 금융과 무역 패권은 독일의 생산력 앞에 무력했다. 비스마르크의 말처럼 결국 역사를 움직인 것은 ‘철과 피’였다. 미국과 소련의 생산력이 아니었다면, 영국이 독일을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아담 스미스가 남긴 “국가의 부는 땅의 크기나 금의 양이 아니라 국민이 생산하는 재화의 총량, 즉 생산력에 달려 있다”는 교훈을 망각한 대가는 제국의 해체였다.
그렇다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영국의 과거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을 여러모로 떠올리게 한다. 한때 압도적 생산력을 자랑했던 미국은 이제 대량 고용형 제조업을 상당 부분 신흥국에 내주었다. 특히 중국은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몫을 가져가며, 어느새 미국을 앞서는 제조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미래가 반드시 영국과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미국의 힘은 과거 영국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미국의 기술 우위는 여전히 건재하다. 중국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ICT, 반도체, 바이오, 항공우주 등 미래 핵심 산업에서 미국은 여전히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산업은 복잡한 글로벌 분업 체계에 의존하거나(반도체), 단기간 물량 공세만으로 따라잡기 힘든 분야(바이오·항공우주), 혹은 미국이 표준과 플랫폼을 선점한 영역이다.
둘째, 영국의 패권이 식민지에 의존했다면, 미국은 동맹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본국 자체의 규모와 체급이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지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영국의 식민지와 달리, 미국은 다양한 안보·기술·무역 동맹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셋째, 미국은 인구 구조, 풍부한 자원, 안정적인 제도적 우위 덕분에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로 남아 있다. 대영제국 시절 자본은 본국을 떠나 식민지로 유출되었고, 이는 인력 유출로 이어져 영국의 잠재력을 잠식했다. 호주·캐나다·남아공은 그 결과의 산물이었다. 반대로 미국은 지금도 전 세계 자본과 인재가 모여드는 곳이다. 영국의 금융 패권이 제조업 공동화를 불러온 것과 달리, 미국은 자본 유입을 통해 국내 생산성 강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첫째, 제조업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형 제조업에서 우위를 강화해야 한다. 단순 재국산화가 아니라 기술 장벽이 높고 연구개발 집약도가 큰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리쇼어링’이 아닌 전략적 다변화와 상호의존 관리 체계를 통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모든 것을 직접 감당하려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셋째, 달러 패권이 월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국 제조업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2의 뉴딜에 버금가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산업 재편이 필요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그리려고 노력할 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