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패배의 씨앗은 승리로부터 난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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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조조, 유비, 손권은 난세 속에서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막상 영웅의 칭호를 획득한 뒤에는 강건함과 영민함을 잃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셋 모두 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 곧 총기가 줄어들기 시작한 지점과 일치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조조는 평생의 숙적이었던 원소를 격파하고 북방을 제패했다. 하지만 곧이어 벌인 적벽대전에서 패배했고 이훈 일관된 전략을 보여주거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유비는 형주, 서천, 한중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고 한중왕이 되었다. 하지만 왕에 오른 바로 그해에 관우를 잃었고, 이후 무모하게 오나라를 공격했다가 대패하고 치욕 속에 생을 마감했다. 손권은 적벽, 이릉, 석정의 싸움에서 수성의 달인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결과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제위에 오른 뒤 손권은 아예 딴사람이 된 것처럼 실정을 거듭했고, 결과적으로 오나라가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어째서 이들은 젊었을 때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했던 걸까?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노쇠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일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첫째,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처음 역사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들에겐 승부사의 결기가 있었다. 하지만 정상의 자리에 오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부귀영화를 잃을까 두렵고 영웅의 칭호를 잃을까 망설이게 된다. 과거에는 승률이 20%만 되어도 모든 걸 걸었다면, 성공한 이후에는 승률이 80%는 되어야 싸움에 임하게 되었다.



둘째, 교만 때문이다.



관도대전에 이긴 조조는 천하통일이 목전에 있다고 믿었다. 한중왕에 오른 유비는 손권을 우습게 여겼다. 조조와 유비가 죽은 뒤 손권은 스스로를 최후의 승리자라고 믿었다. 자기가 무적이라고 믿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이들의 파멸이 시작되었다.



셋째, 분열 때문이다.



조직이 커지고 먹을 게 많아지자 각자 동상이몽에 빠져 서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결과 리더와 부하들 간의 심리적 거리도 점점 더 멀어졌다.



처음 궐기할 때에는 리더와 부하들 간에 끈끈한 동지애가 있었다. 젊었을 때의 조조는 부하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걸 즐겼고, 중요한 인선은 언제나 직접 결정을 내렸다. 유비는 측근들과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유명하며, 손권 역시 부하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과 학업까지 직접 챙길 만큼 섬세한 리더였다. 언더독 시절의 이들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선 치열하게 토론하되 일단 결정되면 하나로 일치단결했다. 곽가는 조조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자 바닥에 침을 뱉었고, 방통은 유비를 가리켜 은혜와 신의가 없다고 지적했으며, 장소는 손권을 모욕적으로 느껴질 만큼 꾸짖었지만 오히려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내부 파벌이 많아지고 서로 공유하는 공감대가 사라지면서 조직은 활력을 잃었다.조조는 말년에 친족 및 창업 세력, 중간에 합류한 항장 세력, 기득권을 지키려고 합류한 호족 세력, 한나라 부활을 꿈꾸는 근왕 세력들 간의 불화를 제어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 결과 특유의 호방한 카리스마가 아닌 직위에서 나오는 권위에 의존하게 되었다. 유비 역시 오랜 측근들과 형주 세력, 익주 세력 간의 갈등 속에 경계하는 마음이 커졌다. 말년에는 제갈량조차도 유비에게 조언하는 걸 망설였을 정도다. 가장 심했던 건 손권이다. 말년에 오나라는 사분오열되어 서로를 잡아먹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조조는 잃을 게 많고 교만했으며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원소를 상대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막상 승리하고 나니 조조는 자기가 꺾은 원소를 닮아갔고, 그 결과 세력은 약했지만 필승의 자세로 강력하게 단결한 유비에게 패했다. 그러나 그 유비조차도 승리에 취하자 곧 변해갔고, 언더독 정신으로 무장한 손권에게 치욕을 당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핍이 승리의 비결이 되고, 승리가 파멸의 씨앗이 된다. 아무리 강한 나라, 잘나가는 기업과 개인도 영원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P.S.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마지막 순간에 젊은 시절의 냉철함을 보여주었고, 유비는 제갈량에게 진심을 다해 후일을 맡겼다는 점에서 과연 비범하다고 하겠다(아쉽게도 손권은 회광반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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