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육손, 그리고 사마의

관계의 원동력이 가져오는 차이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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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 유비를 비롯한 1세대 리더들은 무에서 유를 일구는 과정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 끈끈한 스킨십으로 연결된 측근들, 강력한 카리스마로 업무 전반을 직접 챙기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 후계자들은 달랐다. 황제가 직접 장부를 뒤지고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뒹구는 건 위험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결과 규모가 크고 오래된 조직일수록 권위와 권력을 분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삼국지』도 후반부가 되면 황제들이 아니라 그들을 대신해 조직을 이끌었던 2인자들이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촉나라의 ‘제갈량’, 오나라의 ‘육손’, 위나라의 ‘사마의’가 그들이다.



다음은 세 사람이 각각 권력의 절정에 올랐을 때 누렸던 관직들이다.



제갈량은 ‘승상’인 동시에 ‘녹상서사’였다.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겸직한 것으로, 행정의 양 축을 한 사람이 독점한 것이다. 여기에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례교위’와 익주의 행정을 담당하는 ‘익주목’ 자리도 겸했다. 형주를 상실한 촉나라에게 익주가 나라 그 자체였던 만큼 사실상 온 나라의 행정권을 틀어쥐고 있었던 셈이다. 유비가 죽을 때 “만일 내 아들이 재능이 없다면 그대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그 입지가 가히 어마어마했다.



육손은 이릉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보국장군’에 봉해져 군부의 1인자가 되었으며 ‘형주목’도 겸직했다. 말년에는 ‘승상’의 자리가 더해져 행정부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손권의 신임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손권의 인새를 따로 새겨 육손에게 맡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마의는 조비 때 ‘녹상서사’로 임명되어 활약했지만, 처음부터 앞서의 두 사람에 견줄 만한 거물은 아니었다. 제갈량의 북벌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거물이 되었지만 그를 견제할 수 있는 라이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칼로 권력을 찬탈해 정상에 올랐다.



2인자였을 때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셋 가운데 가장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건 제갈량이다. 유선은 그저 군림할 뿐, 실제로 통치한 건 제갈량이었다. 다음은 육손이다. 손권은 강력한 군주였지만 육손에게만은 거의 동업자에 가까운 수준의 포지션을 허락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건 사마의였다. 그에게는 항상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조비는 사마의를 총애해 고속 승진시켰지만 항상 까다로운 상사, 불편한 동료를 옆에 붙여놓는 걸 잊지 않았다. 조예도 사마의에게 존경심에 가까운 신뢰를 보였지만, 막상 후사를 맡길 때에는 망설이며 선택을 연거푸 뒤집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말은 권력의 강했던 순서와는 정반대였다.



제갈량은 끝까지 유선에게 충성을 다했다. 권력의 사유화를 위한 시도도 하지 않아 그 후손들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졌다. 육손은 후계자 문제를 놓고 손권과 신뢰가 무너졌고, 그 결과 원통함 속에 화병으로 사망하는 결말로 끝났다. 단, 둘의 결별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으며 손권은 육손의 아들을 보호해 주는 등 최소한의 배려는 했다. 가장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은 건 사마의였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권력을 찬탈했다.



어째서 이런 결과로 이어졌을까?



유비는 제갈량에게 ‘한나라의 부흥’이라는 꿈을 제시했다. 인간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비전,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관계는 오래간다. 유비 사후에도 제갈량이 충성을 다하게 하고, 촉나라가 쪼개지지 않고 버틴 힘도 여기에 있었다. 설령 제갈량이 반란을 꿈꾸었더라도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갈량의 권력을 지탱하는 기반이 바로 유씨에 대한 충성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손권과 육손의 관계는 이익으로 묶여 거래하는 관계였다. 두 사람 간에 인간적 신뢰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좋았던 시절’에 이들이 보여준 파트너십은 리더십의 모범으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서로의 이익이 엇갈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게 됐다. 우리 주변에도 일이 잘 풀릴 때에는 훌륭한 동료였지만, 상황이 나빠지자 적이 되고 나아가 원수가 되어버린 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사마의는 이보다 더했다. 위나라 황제들은 사마의를 필요에 따라 도구처럼 부렸다. 한나라로부터 황실을 찬탈할 때에는 여론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명문가 출신인 사마의가 필요했지만, 막상 황권이 안정화되자 사마 씨 집안의 세력을 경계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에는 백전백승의 사마의에게 군을 맡겼지만, 평화로울 때에는 손발을 자르기를 반복했다. 상대가 자기를 필요에 따라 부리는 존재로 대하자 사마의도 같은 태도로 답했다.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그와의 관계가 무엇으로 맺어져 있는지, 그 관계가 유지되게 해주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 돌아보기를 권한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사정은 항상 바뀌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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