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너 어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개성파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신작 ‘One Battle After Another’를 봤다.
판단 미스였다. 추석 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게다가 주인공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기에 자연스레 액션 활극일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추석 개봉작은 가족영화’라는 나의 오래된 상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생각해보니 극장을 채운 관객들은 대부분 연인, 외국인, 혹은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변했듯 극장 풍경도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에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감독은 미국의 현주소를 때로는 블랙코미디 형식을 빌려 과장되게, 때로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킬 만큼 리얼하게 묘사한다. 실소를 자아내는 과장된 연출에 잠시 긴장을 풀 때마다, 익숙한 얼굴과 대사가 불쑥 등장해 현실을 떠올리게 만들고 긴장을 되살린다. 이민, 인종, 가부장제, 낙태, 표현의 자유 같은 민감한 주제들이 날것 그대로 펼쳐진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투쟁’이다. 백인과 유색인종, 남성과 여성,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아버지와 딸,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완벽한 ‘선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 문제에서는 혁명가를 자처하면서도 나이나 성별의 문제에서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식이다. “모든 혁명은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결과로 끝난다”는 영화 속 대사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결말은 기성세대가 혐오의 고리를 끊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데서 마무리된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상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지만, 결국 현실과 타협하거나 길을 잃었고, 심지어 더 큰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오직 좌절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기성세대가 낳은 모순의 결과물이자 미래 세대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딸’은 오히려 그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본의 힘일까? 딸을 연기한 체이스 인피니티(Chase Infiniti Pane)는 데뷔작임에도 대단히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런 작품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의 저력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민감한 주제를 1천억 달러가 넘는 예산의 블록버스터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상업적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하다. 어쩌면 이 작품은 미국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현지의 민심을 가늠할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넷플릭스 시대에도 여전히 ‘고전 시네마’만의 가치가 존재함을 증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는 지나치게 ‘좌파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품은 우파적 가치관을 비판하는 메시지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흑인 여성 혁명가에게 변태적 성적 욕망을 느끼는 백인 기독교 군인’이라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흑막처럼 그려지는 기독교 민족주의 단체의 이름이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PC 열풍 당시,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피 할리데이’로 바꾸자는 주장에 우파 진영이 반발했던 해프닝을 떠올리게 한다.) 적어도 영화의 정서가 좌파에 기울어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을 ‘좌파적 세계관을 강요하는 영화’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영화 속 혁명가들은 권력자들만큼이나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양측은 서로상황이 바뀌면 신념을 뒤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겨누는 칼날은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도록 강요하는 시스템 그 자체다.
주제의식을 제외하고 기술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뛰어난 작품이다. 사운드 활용이 탁월해, 대사 한마디 없는 장면에서도 메시지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캐릭터의 깊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폭발적인 전개 속도를 유지하는 연출 역시 훌륭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깝다. 디카프리오와 베니치오 델 토로도 대단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악역을 맡은 숀 펜인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29금’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표현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다루는 주제의식과 감정선 때문이다. 세상을 밝게만 보는 사람이나, 그 쓴맛에 좌절해 버린 이들에게는 버거울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곳이며,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평: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한 듯한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가 코엔 형제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