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bai Airshow에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중동에 각인되어 있는, 세계의 교차점으로서 보낸 오랜 역사에서 얻은 뿌리 깊은 지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전시장은 이곳 중동이 독특한 정치적 완충지대이자 쪼개지는 세계 질서에 누구보다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중동의 힘은 단순히 풍부한 자금력에 그치지 않는다. 석유 졸부라는 일부의 착각과 달리 해외 유학파 엘리트들로 구성된 중동의 신세대 리더십은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전략가들이다. 중동에 대한 편견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그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오히려 순박한 건 한국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에어쇼도 구석구석에서 Dubai의 영리함이 느껴졌다. 미국과 중국은 ‘중동의 베스트 파트너’ 타이틀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먼저 중국.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유럽의 에어쇼에서는 더 이상 중국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최 측은 자기를 과시할 기회에 목말라 있는 중국에게 자리를 깔아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파리, 판버러 에어쇼에서의 소심한 모습과 달리 중국이 여기서 준비한 무대는 화려하고 자신감에 넘쳤다. 독자 개발한 COMAC 민항기의 시범 비행이 가장 눈에 띄었지만 중국이 준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방산, 항공 플랫폼은 물론 각종 소부장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마련한 무대는 가히 항공우주의 뷔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심지어는 낙하산 업체도 있었다).
미국도 칼을 갈고 나온 게 느껴졌다.
아마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방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쟁쟁한 기업들이 ‘중동의 친구’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한 가지 눈에 띄었던 건 전면에 현지인을 내세운 회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Lockheed Martin과 Boeing도 미국에서 온 출장자보다 현지 직원이 더 많게 느껴졌다. 중국 부스가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자주 들려서 점수를 깎아 먹는 것과 비교해 결정적 차이.
가장 실망스러운 건 유럽이었다.
전시관 연출은 훌륭했다. 참여한 기업들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였던 건 세일즈 정신이다. 에어버스의 홍보 영상 문구를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함께 유럽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선언은 파리 에어쇼에서나 어울리지 이곳 Dubai에서 외칠 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상이 검토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올 수 있었던 걸까? 뭐 그런 걸 가지고 시비를 거냐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지정학 이야기는 이쯤 하고, 에어쇼의 contents는 어땠을까?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측은 주최 쪽도 참가한 기업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Boeing과 Airbus가 발주 경쟁을 벌이며 시장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시대는 지났다. 친환경 비행기와 New Space 열풍도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AI와 무인기가 새로운 테마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뜸이 좀 덜 든 느낌이다. 전시 연출자들 입장에서는 간판 아이템이나 브랜드 스토리를 짜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가장 눈에 띈 건 무인기.
무인기가 언젠가 대세가 될 거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미래에 자기 돈을 거는 투자자는 찾기 어렵다. 열정적인 UAM 지지자로 남아 있는 UAE에서 열리는 이번 에어쇼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기사회생 and/or 대박을 노릴 수 있는 기회. 기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시연이라는 일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Joby가 시범 비행을 시도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우주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에어쇼답게 비행기와 관련된 위성통신 인프라가 주를 이루었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AI 기반 위성 영상 분석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방산과 달리 우주는 해외 기업보다 현지 기관, 기업들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직원들의 면면도 미국, 유럽계 직원들의 비중이 매우 높아 보였다.
앞으로 우주개발을 남에게 위탁하지 않고 직접 하겠다는 중동의 의지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기술이 없으면 사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사람이 없으면 밖에서 모셔오면 된다는 식이다.
항상 느끼는 것인데 중동은 ‘젊은 여성 엔지니어’ 이미지를 유독 좋아한다. 긍정적인 시그널 아닐까? 이미지와 실체는 서로를 촉진하는 법이니까.
1년 만에 재회한 UAE 우주청장. 두바이 초콜릿 감사합니다.
KF-21를 전면에 내세운 KAI 부스. 줄을 서서 KF-21을 구경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뜨거운 감격을 느꼈다. 인도네시아여, 보고 있는가?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오묘하게 섞여 있는 게 이곳 중동의 매력인 것 같다.
아쉬운 게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Dubai Airshow는 갈수록 더 중요한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동의 열정과 영리함, 무엇보다도 갈수록 빠르게 쪼개지고 있는 국제질서의 재편 때문이다. 냉전 시대 스위스가 누렸던 포지션을 21세기 기술 냉전 시대에 이곳 UAE가 계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