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능력자다>
나는 출퇴근길을 걸어서 다닌다. 편도 기준 6km, 왕복 12km 정도라 특별히 대단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 집에 돌아오면 대충 2만보 정도 찍게 된다.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건 6년이 넘도록 이어 온 꾸준함이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빼먹지 않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부터 시청역까지 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단 지하철을 탄 뒤 중간에 하차해 지하로 걸으면 된다. 출장을 갈 때에는 좀 더 일찍 나가 공항이나 서울역을 뱅뱅 도는 것으로 할당량을 채웠다. 유일하게 답이 없는 때라면 더위가 절정을 찍는 7~8월인데, 이땐 새벽에 집 앞 공원을 뛴 뒤 샤워하고 출근하는 것으로 루틴을 유지했다.
루틴의 힘은 위대하다. 6년 동안 같은 루틴을 유지하자 하루라도 빠지면 즉각 몸에 반응이 온다. 처음에는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 곤욕이었지만 이제는 5시 반이면 알람이 없어도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도저히 루틴을 유지할 수 없는 날(e.g. 출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야 할 경우)에는 뭔가 빼먹은 듯한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이 세상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내 몸만큼은 예외다. 돈과 운, 남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의지만 있다면 내 몸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아침 운동이 좋은 이유는 건강도 있지만 하루를 ‘승리’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다. 하루를 챔피언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사람과 패배자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보낼 하루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루틴을 지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 오늘 하루를 이대로 정갈하게, 계획대로 보내고 싶다는 방어기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늦잠이라도 자서 루틴을 빼먹으면 남은 하루가 엉망이 된다. ‘오늘은 날렸다’는 묘한 패배감 때문에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이도 저도 아닌 날이 되고 만다.
시작 못지않게 중요한 게 마무리다. 아무리 시작이 깔끔해도 일과를 마치고 나면 걱정과 분노, 답답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이때 다시 한번 발휘되는 것이 루틴의 힘. 피곤함을 이기고 걸어서 퇴근함으로써 승리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나는 걷는 것 말고도 오래된 루틴을 몇 개 더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다.
주변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혹시 실직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어쩌면 진담인 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글쓰기에 그렇게 긴 시간을 쓰지 않는다. (Plus, AI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AI에 뇌를 위탁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내게 중요한 건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즉 루틴이기 때문이다).
짧더라도 서론-본론-결론 구조를 갖춘 글을 매일 1개 이상 쓰는 게 나의 오래된 루틴이다. 딱히 대단한 건 아니다. 옛날에 썼던 글을 보면 형편없는 것도 많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해석이 안 되는 것도 많다. 하지만 꾸준히 루틴을 지켜 왔던 것만큼은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덕분에 새로운 소식을 들으면 나름대로 해석해보고 특이한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하는 버릇이 생겼다. 뒤죽박죽이라도 일단 초안을 적어둔 뒤 여유가 될 때 다시 생각을 정리해 완성한다. 보통 하루에 30분이면 충분하다. 덕분에 내가 얻은 것들을 생각하면 가성비 좋은 투자였다.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초능력은 꾸준함이다. 그리고 꾸준의 매개체는 루틴이다. 작은 것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시작은 작을 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