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시대정신이 된 세상이다. 정치, 경제, 산업의 방향추가 모두 AI를 중심으로 설정되고 있다. 온 세상의 돈 역시 AI를 쫓아 흐른다. 일론 머스크는 화폐와 노동의 의미가 사라질 미래를 호언장담한다. 실물경제가 침체된 와중에도 주식시장은 AI 기대감만으로 연일 고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괜찮은 걸까?
OpenAI의 올해 매출은 약 10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작은 돈은 아니지만 AI 붐의 ‘창시자’라는 위상에 비해선 초라한 규모다.
반면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OpenAI와 달리 장부를 공개할 의무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 한 해에만 800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투자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최소 6조 달러 이상의 돈이 AI 생태계에 투입될 것으로 본다. 이중 대부분이 데이터센터 구축 등 인프라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AI 붐은 대부분 AI가 실제로 만들어낸 가치가 아니라 AI를 담을 그릇을 지으려고 모인 돈이다. 현재 AI는 결과가 불투명한 기술 고도화와 역대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쌍두 마차처럼 함께 달리는 불안정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 만일 두 말 사이의 간극이 커져 균형이 무너진다면 마차는 뒤집히고 말 것이다.
나는 지금의 AI붐을 본질적으로 ‘건설업’이라고 본다. “GPU 000장 확보”, “전력 용량 X배 확대”,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실적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프라 투자만 홀로 폭주하는 매우 전형적인 버블 패턴이다.
AI와 달리 데이터센터는 물리적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완성하는데 몇 년이 걸리는 시설에 수십, 수백조원의 자본이 묶여 있는 동안 AI의 발전이 지금과 완전 다른 궤도로 튈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거액을 들인 인프라들이 현대판 바벨탑으로 전락할 지도 모를 일이다.
기업의 AI 도입 속도도 예상보다 더디다. 보안, 책임 소재 등 해소되지 않은 문제점이 많기 때문이다. AI의 정확도가 95%를 보여도 정부와 군, 대기업들에게는 5%의 오류가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이들이 핵심 기밀과 중요한 의사결정을 AI에 맡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클라우드가 일터에서 일상화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AI의 생산성 혁신도 아직은 미래의 가능성에 그치고 있다. 여전히 70~80%의 사람들은 AI를 구글검색의 보완재(또는 21세기판 심심이) 정도로 사용한다. 이메일이나 엑셀이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어 준 걸 떠올리면 과연 LLM이 전무후무한 혁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공지능이라는 화려한 이름을 지우고 냉정하게 살펴보면 결국 LLM은 새로운 소프트웨어일 뿐이다.
결국 핵심은 수익성이다. 지난 몇 년 간 AI가 우리 일상 속에 빠르게 스며든 건 맞다. 하지만 이 기술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AI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AI를 실제로 비즈니스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수익 구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역사는 신기술의 수혜자는 기술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한 사람들이었던 걸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초고속 인터넷을 깐 기업들이 아니라 아마존, 페이스북, 그리고 유튜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AI라는 테마만 붙으면 GPU, 메모리, 클라우드, LLM, 그리고 ‘공감이 가지 않는 애플리케이션’과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없는 벤처기업’에 무분별하게 돈을 투자하고 있다. 기술 생태계가 결국 승자독식 구조로 귀결된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의 AI 투자는 심각하게 중복되어 있다. 1등은 한 명만 될 수 있는데 모두가 1등이 될 것처럼 밸류에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너도나도 AI를 외치는 것 역시 위험신호 – 모든 버블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패턴이다. 5축 장비 몇 대 들여놓고 범용 밸브 깎는 업체가 겉포장만 우주, 무인주행, 친환경을 넘나들며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노리지만 실상 그 본질은 쇠 깎는 업체일 뿐이다 (기계가공을 폄하하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스스로의 본질을 부끄러워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AI의 실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엔지니어링과 백오피스 업무에 LLM이 가져온 효율 개선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방, 제조 자동화 등 미래권력에 미칠 효과를 고려하면 AI가 단순 버블로 사라지는 걸 정부가 방치하진 않을 것이다.
단, 어디까지나 긴 호흡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미생들은 그렇게 먼 미래만 바라보며 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모든 꿈이 그렇듯 AI도 지갑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냉혹한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단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천재가 바보가 되고, 친구가 적이 되고, 부자가 빈털털이가 되고, 성공담이 바보짓으로 재해석되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질 것이다. 이는 AI 이전에 있었던 모든 꿈들이 현실로 넘어오는 경계에서 겪었던 일들이다. 한때 3D 프린팅이 기존의 대형 제조업을 몰락시킬 거라고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집마다 1대씩 프린터를 두고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드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었다.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글쎄? 기존 제조업의 유용한 보완재로 자리매김했지만 혁명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뭐든 신기술이 나오면 자극적이고 과열된 전망이 쏟아진다. 호기심이 내재된 인간의 본능일까? 아니면 언제나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 배회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일까? 나는 소위 욕망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저성장이 길어지자 우리는 무슨 테마라도 일단 뜨기만 하면 갈 곳 잃은 욕망을 쏟아 붙는다. 테마가 없으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인간은 발명의 동물인 동시에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 존재(Homo Fictus)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간 불었던 붐들을 돌이켜보면 현대인들과 과거 용과 마녀를 믿었던 중세인들이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AI도 과거의 다른 신기술들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한계와 가능성,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다. 사람들이 AI에게 냉정한 수익성의 잣대를 들이댈 순간, 즉 옥석이 가려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AI는 발명에서 막 응용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산업별 솔루션이 본격적으로 구현될 때, 정확히는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실용적 모델들이 등장할 때 비로소 진정한 AI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전까지는? 묻지마 투자는 자제하는 게 좋다. 만일 하겠다면 범용화 될 가능성이 높은 인프라나 지나치게 원대한 목표를 제시하는 기업들보다는 AI의 실용적 활용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쪽에 투자할 걸 권한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투자는 돈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도 포함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