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배>
유엽은 조조와 조비 휘하에서 활약한 참모였다. 뒤를 이은 황제 조예 역시 처음에는 그를 존중했다.
어느 날 둘이 독대한 자리에서, 조예가 촉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유엽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막상 유엽은 뒤에서는 반대하는 동료들에게 동조했다. 자신감을 얻은 조예가 촉 정벌을 공론화하자 대부분의 신하들이 반대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엽의 이중적 태도가 드러났다.
의심을 품은 조예는 그를 시험하기로 했다. 결국 유엽은 조예가 무슨 말을 하든 “옳다”고만 답하며, 군주의 말이 바뀌면 자신의 입장도 바꾸는 인물임이 밝혀졌다. 이 일로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유엽은 근심 속에서 생을 마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애매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도 실제 결말은 이보다 더 비참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때 유엽은 호방함이 넘치는 사나이였으며 뛰어난 전술가였다. 조조 시절에는 군주의 뜻을 거스르더라도 필요한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조조가 반대에 맞서 촉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해 ‘등록망촉’ 고사의 주인공이 된 것도 그였다. 그렇게 곧은 간언을 하던 유엽이 같은 주제를 두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다가 초라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배포와 용기는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당신이 힘 있는 쪽일 때는 더욱 그렇다.
반면 아첨하는 말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거부하기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자기기만에 취약하기 때문에 아첨이라는 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란 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달콤한 말과 치장된 태도로 접근해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 즉 간신배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먹이로 삼아 배를 불린다.
드라마에 그려지는 모습과 달리 역사 속 간신배들은 대체로 겉으로는 군자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완용은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서예를 즐기던 모범적 선비였고, 이임보는 온화한 성격으로 어디서나 호감을 샀다. 채경은 글과 그림이 뛰어나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 시대의 교양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식별하고, 그들이 친 함정에 빠져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첫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내용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과거에 나와 의견이 같았다는 이유로 그의 말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큰 이익을 노리기에 앞서 먼저 신용을 쌓는다.
둘째, 나와 지나치게 의견이 잘 맞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각자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진 존재다. 언제나 나와 생각이 같다면 뭔가 더 큰 것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셋째, 내가 불편해하는 인물을 앞장서서 배척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간신배들은 다양한 의견과 객관적 검증을 차단해 대상을 고립시키는 데 능하다. 일단 눈과 귀를 독점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이들만 탓할 문제도 아니다. 한비자는 “군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하는 없다”고 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간신배로 만드는 것도, 정직한 친구로 만드는 것도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습기가 찬 곳에 곰팡이가 피듯, 비판을 싫어하는 사람 주변에서는 정직한 사람들이 떠나고 간신만 모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유엽도 억울한 희생자였다. 조조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유엽은 거침없는 간언에도 불구하고 중용되었다. 그러나 위나라가 세워지자 전 정권인 한나라의 혈통을 지녔던 그는 점점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결기가 넘쳤던 풍운아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주의 표정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며 말 바꾸는 간신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첨의 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결코 노하지 않는다는 점을 온 세상에 보여주는 것뿐이다.”
하지만...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성경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워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