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

곽가와 진군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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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적소>



삼국지연의는 위나라의 참모들에게 대접이 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가 만큼은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조조는 첫 만남에서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내가 대업을 이루게 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그가 보여 준 활약상은 그 기대를 충분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의 시국을 읽는 혜안과 과감한 전략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38세의 나이에 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이상 조조를 섬긴 초일류 참모들과 비교해도 명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곽가는 주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사치스러웠으며 술과 여자, 도박을 좋아했다. 조조가 자신의 진언을 듣지 않자 “어차피 망하게 생겼으니 차라리 지금 나를 죽여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만큼 성깔도 괴팍했다. 삼국지를 쓴 진수는 곽가를 두고 “덕행은 모자랐지만 계책은 뛰어났다”는 애매한 평을 남겼다.



그럼에도 조조는 곽가를 깊이 총애했다. 주변에서도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곽가를 제어하려 드는 이는 없었다. 딱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진군은 나랏일을 처리함에 있어 사심이 없고 공정한 것으로 유명했다. 조조가 곽가를 총애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곽가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지적하며 여러 차례 고발했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초창기부터 조조와 함께한 곽가는 1세대 공신이자 최측근이었다. 반면 조조의 세력이 어느 정도 커진 뒤에 합류한 진군은 2세대에 해당했다. 정치적으로도 청류파에 속한 진군은 탁류파 성향에 가까웠던 조조와 뿌리가 달랐다. 뒤늦게 합류한 외부인이 조직의 핵심 라인에 도전하는 모양새였던 것이다. 취향 면에서도 엄격하고 고지식한 진군보다 자유분방한 곽가가 조조와 더 가까웠다. 어쩌면 곽가가 저지른 비행 중에는 조조가 함께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조는 진군의 용기를 높게 평가했다. 혹자는 진군이 명문가 출신이라 조조가 봐준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어디 조조가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인가? 훨씬 더 대단한 명문가 출신이었던 최염, 양수, 공융에게도 칼을 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조조다.



그는 진심으로 진군의 올곧음을 높이 샀던 것이다. 이후 진군은 상서령에 올랐는데, 이 자리는 권력자 가까이에서 실무자들을 관리하는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한다. 가장 편한 사람을 앉히고 싶은 자리에 여러모로 불편한 인물을 기용한 셈이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에 머물렀겠지만, 조조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기존에 없던 ‘사공군사제주’라는 벼슬을 신설해 곽가에게 맡겼다.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당시 조조의 공식 지위는 ‘사공’으로 황제가 거느린 신하들 중 한 명이었다. 조조의 부하들도 실질적으로 조조의 통제 아래 있었지만 형식적으로는 모두 조정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사공군사제주는 오직 사공, 즉 조조에게만 조언하는 직책이었다. 조조는 곽가가 머리는 비상하지만 일상적인 업무나 중간관리자 역할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가 오직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무능한 지도자였다면 싸움을 제어하지 못해 둘 다 잃었을 것이다. 편협한 지도자였다면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진군을 숙청했을 것이다. 고지식한 지도자였다면 법의 엄정함을 지키는 대가로 뛰어난 참모를 잃었을 것이다.



유능한 지도자는 사람의 장점과 단점이 결국 동전의 양면임을 안다. 곽가의 오만함과 방탕함은 단점이었지만, 그러한 자기과시욕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바로 그가 발휘한 기지의 원천이었다. 만일 곽가의 단점을 억지로 고치려고 했다면 그의 장점도 사라졌을 것이다. 진군도 마찬가지, 만일 그에게 곽가의 역할을 맡겼다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정해진 규칙과 주어진 목표가 있어야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해가 짧은 나라에서는 선글라스가 필요 없듯 사람의 재능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주변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연 그들이 적재적소에 있는지를 먼 고민해 보길 바란다. 어쩌면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당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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