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우주 종사자들에게는 다이나믹한 한 해였다. 물론 100% 좋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극도의 즐거움과 공포, 그리고 혼란이 연달아 몰아친 한 해였다는 의미다.
“우주산업의 병목 현상(Bottleneck)에 대한 의견”을 묻는 DM에 영감을 받아, 다가오는 2026년이 어떤 해가 될지 개인적인 단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소위 ‘뉴 스페이스(New Space)’라는 표현이 유행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우주산업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되는 과정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1. 불신의 시대
불안정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각국은 우주 데이터 주권 확보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다. 동맹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한 시대다. 이웃 나라의 위성 시스템에 당연히 편승할 수 있던 안이한 시절은 끝났다. 어쩌면 GPS 사용이 당연한 권리가 아닌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에 맞서 독자적 위성 계획을 발표하는 국가들이 줄지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수요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주산업 역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보다는 1930년대를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우주개발은 점점 더 폐쇄적이고 국수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수출을 원하는 국가라면 수입국의 ‘소버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현지화·자국 기업 중심의 기조는 한국처럼 포지션이 애매한 국가에게는 치명적인 허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2. AI의 시대
AI의 등장으로 위성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 도구에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 세계 군과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AI 기반 실시간 영상 분석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곳이 늘고 있고 기업들도 관련 요소기술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밖에도 설계부터 발사까지 위성 제조·운영 사이클 전반을 AI로 자동화하려는 시도 역시 주목받고 있다.
3. NASA의 정상화 (아마도)
올해는 NASA를 둘러싼 파격적인 소식이 유독 많았다. 아쉽게도 과학보다 정치 뉴스가 훨씬 많았고, 대부분은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가 NASA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어쩌면 루머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트럼프가 Jared Isaacman을 NASA 국장으로 (재)지명하면서, NASA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Jared는 강렬한 도전정신, 빠르게 전염되는 강렬한 긍정 바이러스, 그리고 타고난 기업가 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나같이 지금의 NASA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덕목들이다.
이제 NASA의 ‘무두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됐다. 걱정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현 시점에서 제러드보다 나은 대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4. 발사체, 독점에서 경쟁으로
Blue Origin이 New Glenn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오랫동안 SpaceX가 독점해온 발사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유망주인 Rocket Lab 역시 2026년을 목표로 중대형 발사체 데뷔를 준비 중이다. 어쩌면 2026년은 고질적인 발사체 부족 현상이 해소되는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발사체의 다양성 증가는 발사 비용 하락과 새로운 혁신 촉진으로 이어질 것이다.
5. 느림보 유럽
유럽은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탓에 추진력이 결여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돈도 기술도 아니라 결국 ‘리더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유럽이 대륙 차원의 대전략을 내놓을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설령 내놓더라도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2026년에도 “유럽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만 무성하겠지만, 실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다.
오히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유럽 전체가 아니라, 27개 EU 회원국 중 야심 많은 (그리고 참을성이 없는) 멤버들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팀플레이에 얽매이지 않겠다며 독자 노선을 선언하는 국가들과 이를 비판하는 나머지 국가들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6. 돈이 곧 힘이다
반면 중동의 위상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돈이 귀한 시대다. 혁신과 성장을 위해(혹은 오늘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돈이 급한 전 세계 우주 플레이어들에게 중동과의 협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주 경쟁의 선두에 누가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중동의 투자를 쫓아가면 된다.
2026년은 중동 국가들이 수많은 메가프로젝트와 파트너십을 발표하는 해가 될 것이다. 이는 기회일까? 아마도.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 하드코어 예상.
7. M&A 증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업계의 합종연횡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대기업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소규모 기업은 숨통이 되어줄 국방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와 합병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모두를 놀라게 할 대형 M&A 소식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8. 용의 부상
그동안 중국은 우주 분야에서 고립된 플레이어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미국이 우주 협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할수록 더 많은 국가들이 우주 인프라 구축을 위해 중국이 내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중국의 기술은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남미와 중동, 또는 기존에 미국의 우방으로 여겨졌던 나라들이 중국의 시스템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