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미디어의 적통을 돈으로 사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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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미디어의 적통을 돈으로 사다>


넷플릭스가 약 830억 달러에 워너브라더스(이하 ‘WB’)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성사된다면 현대 엔터테인먼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수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1927년 설립 이후 WB는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스튜디오로 자리해 왔다. 블레이드 러너, 샤이닝, 프렌즈,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매트릭스 등 전설적인 작품들이 포진한 WB의 라이브러리는 미국 영화사의 축적 그 자체다. 2022년 MGM 자산을 흡수하면서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007 시리즈 같은 클래식까지 더해져 그 위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처럼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갖춘 스튜디오는 할리우드에서도 드물다.


영화 산업이 스트리밍의 급부상으로 흔들리고 있음에도 WB는 자기들이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WB가 선보인 작품들은,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포함해 연달아 성공했다. 케이블 부문인 HBO 역시 꾸준한 존재감을 유지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번 인수는 넷플릭스 입장에서 해볼 만한 시도다. 기묘한 이야기, 케데헌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넷플릭스는 세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프랜차이즈’를 갈망해왔다. 100년에 걸쳐 축적된 WB의 라이브러리는 그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줄 만한 자산이다. 이 인수를 통해 넷플릭스는 미디어의 ‘오늘’을 지배하는 기업을 넘어, ‘과거’를 사들임으로써 할리우드의 적통을 손에 넣은 계승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미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는 것은 덤이다. 어쩌면 조만간 '프렌즈'와 '해리포터'의 리메이크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미국 현지에서는 DCEU 부활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대한 영향력 또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WB와 HBO를 흡수함으로써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 배급, 브랜드 구축 등 미디어 제작·유통 전 과정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틀어쥐게 됐다. 지금까지 이 정도 규모의 미디어 왕국을 구축한 기업은 디즈니가 유일한데 넷플릭스가 WB와 손잡아 구축하게 될 왕국은 디즈니의 그것보다 더 크고 견고할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장벽도 적지 않다. 100년 역사의 스튜디오를 데이터 기반의 빠른 의사결정 문화를 가진 넷플릭스와 통합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인수합병은 1+1이 2가 아니라 4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0이 될 수도 있다.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두 조직을 섣불리 결합하면 서로 맞지 않는 혈액형을 수혈한 것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독자적 색깔과 강력한 팬층을 지닌 HBO의 브랜드를 어떻게 다룰지도 주요 과제다.


재무적 부담 역시 크다. 아무리 넷플릭스라 해도 830억 달러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이번 거래가 지닌 상징성을 감안하면 정부 당국의 견제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식 알고리즘 기반 의사결정이 창작 다양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이미 제기되고 있다. 할리우드 노조들도 긴장하고 있다.


이번 인수는 21세기 할리우드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사건이며, 앞으로 스토리텔링의 미래를 누가 결정할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이 합병이 창의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성공 사례로 기록될지, 혹은 독점의 폐해를 경고하는 사건으로 남을지는 이제 넷플릭스에 달려 있다.


Note: 다행히도 넷플릭스는 WB의 영화를 계속 극장에 걸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없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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