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가 엔비디아
올해 4월,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반도체 규제를 한층 강화하며 엔비디아의 H20 칩 수출을 금지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다운그레이드 모델이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는 미·중 갈등 속에서도 꾸준히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젠슨 황의 간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중국에서 거둔 매출의 15%를 정부에 내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미국이 이 결정을 번복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렸다.
그러나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규제가 풀렸음에도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에게 H20 대신 국산 칩을 사용할 것을 장려(?)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지원 정책인지, 강력한 규제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괜히 미국만 왔다갔다 하며 체면을 구겼다.
적을 절벽 끝까지 몰아붙이지 마라. 너무 밀어붙이면 결국 날아오를 방법을 배우게 된다.
엔비디아는 고성능 GPU 판매가 막히자 H20 같은 저사양 모델로 규제에 대응했다. 중국이 이를 환영하면서 둘의 불안한 동거가 잠시나마 이어져왔다. 하지만 미국은 규제를 갈수록 더 강화했다. 젠슨 황은 이런 정책이 결국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중국을 차단하면 미국은 핵심 시장을 잃고,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가 아닌 진짜 경쟁자로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경고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제재는 중국으로 하여금 더 이상 미국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과 인재가 투입됐다. 정부는 주요 프로젝트에서 외국산 칩을 배제하며 국내 기업들에게 확실한 시장을 보장했다.
한때 중국 AI 시장을 독점하던 엔비디아의 점유율은 95%에서 한 자릿수로 급락했다. 중국의 H20 접근을 차단한 결과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에게 시장을 통째로 넘겨준 셈이다. 만약 엔비디아가 계속 중국에 판매할 수 있었다면 중국의 AI 생태계는 여전히 미국산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형태로 굴러갔을 것이다.
미국의 심정이 궁금하다. 좋아해야 하는 건가 싫어해야 하는 건가?
Note: 중국의 칩 기술이 엔비디아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니다(아직은 급이 다르다). 이번 조치가 미국과의 다음 협상을 노리고 던진 카드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중국의 발전 속도가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며 이번 결정으로 더욱 가속이 붙을 것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