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의 문과 학생들로부터 “어떤 보직이 좋으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네가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찾아라’는 답을 해주면 다들 답답함을 느끼는 표정이었기에 그동안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를 정리해본다.
군인에 대한 대접이 전쟁시에 평화로울 때가 다른 것처럼 회사도 경기의 흐름에 따라 주목을 받는 직무가 달라진다.
[Phase 1] 경기가 나쁠 때에는 당장 돈을 만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이 최고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영업조직이 득세한다. 보통 이 시기에는 ‘영업팀’이 아니라 ‘사업팀’이라는 명칭이 주로 쓰이는데, 고객이 원한다는 한마디로 타 부서를 합법적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능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빨간 펜을 휘두르는 CFO 라인이 힘을 얻는다.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 투자는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된다.
[Phase 2] 경기가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불황 때 미뤄둔 투자와 신사업 검토가 하나 둘씩 테이블 위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지금 움직여야 미래를 선점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기획,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조직들이 바빠진다. 여기저기서 TF라는 이름의 스터디 그룹과 실험실들이 돌아가게 된다.
[Phase 3] 경기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에 접어들면 돈을 쓰는 사람들, 즉 투자 담당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지금을 놓치면 안된다는 다급함이 커지면서 기존 사업을 다듬는 것보다는 신사업 진입, 내부역량 강화보다는 인수합병이 대세가 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를 독점하게 된다.
[Phase 4] 경기가 슬슬 과열되어 한계를 느끼면 펀더멘털이 아닌 서사에 의존하는 때가 오게 된다. 이때가 되면 비전의 힘으로 외부의 리소스를 끌어올 수 있는 스토리텔러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IR, 대관, 커뮤니케이션 조직의 무게감이 커진다. 미래지향적인 슬로건들이 쏟아지고 브랜드 노출이 잦아진다.
[Phase 5] 성장기가 끝나고 정체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뒷수습을 해야 할 때가 온다. 벌려 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일이 시급해진다. 사업관리(PM), 생산관리 전담 조직이 생기고 지원팀의 기능이 다양해진다. 현장경영이라는 표현이 되살아나는 것도 이때다. 공장장의 권한이 커지고 아예 본사를 공장으로 옮기는 회사가 늘어난다. 때로는 군기반장 조직이 새로 생기기도 한다.
회사를 선택할 때 나의 스킬과 성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곳인지를 고려하면 좋을 것이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이러한 고민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지만.
[결론] 그래도 결국은 자기 성향에 맞는 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경기는 사계절처럼 돌아가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