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은 설정상 하급 전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족인 베지터를 언제나 한두 걸음 앞서 나아간다. (드래곤볼 슈퍼의 설정은 논외로 하자. 마인 부우 편 이후의 드래곤볼은 모사품일 뿐이다.)
단순히 손오공이 더 천재라서 그런 걸까? 아니다. 손오공에게는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도 성장의 각 단계에 딱 맞는 스승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없었더라면, 또는 이들이 나타난 순서가 달랐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완성된 손오공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손오공은 드래곤볼 슈퍼에 등장하는, 흔히 ‘육공’이라고 불리는 그 녀석과는 별개의 캐릭터다.)
극 중 손오공의 첫 스승은 무천도사였다.
나중에는 극의 코믹함을 살리는 캐릭터로 전락했지만 당시만 해도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훈련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들뿐이었다. 무천도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무술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에네르기파도 손오공이 옆에서 보고 흉내 낸 것이지, 제대로 전수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천하제일무술대회 편에서 무천도사가 제대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고 크리링이 투덜대는 장면도 있다.
손오공은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하며 성실함과 꾸준함을 익혔고, 동문인 크리링과 치고받는 과정을 거치며 동료의 소중함과 겸손함을 체득했다. 무천도사가 강조한 ‘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역시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무천도사는 성장의 기본 토대인 ‘태도’를 잡아 준 스승이었다.
두 번째로 만난 스승은 카린이었다.
첫 만남에서 카린은 손오공에게 “너는 상대의 움직임을 전혀 읽지 않아. 그냥 덤벼들 뿐이지”라고 지적한다. 카린을 만난 이후 손오공은 열정을 통제하고 냉정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카린은 핵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주어진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카린을 대표하는 아이템인 선두 역시 상징적이다. 선두는 한 알만 먹어도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는 사기 아이템이지만, 과도하게 먹으면 큰일이 난다. 카린은 초보를 넘어 고수가 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덕목인 ‘절제’와 ‘선택과 집중’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
세 번째 스승은 미스터 포포였다.
보통 신이 손오공의 스승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극 중에서 훈련을 함께한 인물은 포포였다. 신 역시 손오공의 수련 대부분을 포포에게 맡겼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포포는 드래곤볼의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감정을 절제한 존재다. 신이 피콜로와 동화되어 사라질 때 눈물을 보이는 장면 정도가 거의 유일하게 포포가 감정을 드러낸 순간이다.
손오공은 포포로부터 기의 흐름을 읽고 감정을 정제하는 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정신적으로 깊고 강해졌다. 포포와의 수련 이후의 손오공은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손오공은 단순한 파이터를 넘어 득도한 선인, 나아가 구세주처럼 그려지기 시작한다.
손오공의 여정을 완성한 마지막 스승은 계왕이다.
계왕은 손오공에게 계왕권과 원기옥을 가르쳐 주었다. 계왕권은 순간적으로 힘을 증폭시키는 기술이며, 원기옥은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타인의 에너지를 빌려 극복하는 기술이다. 둘 다 스스로의 그릇을 감당할 수 없으면 사용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기술이다. 만약 손오공이 다른 스승들을 만나기 전에 계왕을 만났다면 결코 이 기술들을 성공적으로 구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계왕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피콜로 역시 계왕을 만났지만 계왕권과 원기옥은 배우지 못했다.
이렇게 보고 나면 베지터가 아무리 노력해도 손오공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 당연해 보인다. 베지터는 언제나 혼자였던 반면 손오공은 적으로부터 배우며 그들을 차례로 동료로 삼았다. 베지터가 분노와 탐욕, 두려움 사이를 오가며 흔들릴 때, 손오공은 순수하게 승리에 집중함으로써 먼저 초사이어인이 되었다. 인조인간들과 싸울 때 베지터가 파워에 집착한 반면 손오공은 힘의 효율과 최적화를 추구해 격차를 벌렸다.
어쩌면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유전자를 극복할 수 있다고. 씨앗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잠재력을 발현하는 것은 후천적 환경 — 즉 주변의 관심과 교육, 그리고 노력이다.
주변에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입사원이 있다면 좀 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보자. 손오공도 처음에는 전투력이 낮아서 버려진 하급 전사였다. 만일 무천도사가 손오공을 성격이 괴팍하다는 이유로 포기했다면 지구는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