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와 종회, 경쟁과 견제는 다르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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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견제는 다르다>


서기 263년, 촉나라는 멸망했다. 전쟁이 시작된 게 8월인데 해가 넘어가기 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10만 명이 넘는 군대와 한반도 전체보다 큰 나라를 점령하는 데 불과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고대 시대에, 그것도 말을 타고 행군하기 어려운 촉나라의 지형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성과였다.


전쟁의 주역은 다음 세 사람이었다.


최고 결정권자였던 사마소는 직접 전장에 나서진 않았지만 인사권을 통해 주요 결정에 간여하며 상황을 조종했다. 색깔이 다른 두 사람, 종회와 등애가 서로 견제하도록 배치한 것 역시 그의 의도였다.


총사령관이었던 종회는 명문가 출신의 중앙정부 관료였으며 일찍부터 사마소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뛰어난 참모였지만 직접 전장을 지휘하는 건 촉나라 정벌이 처음이었다.


반면 등애는 가난한 농부 출신이었고 말더듬이라는 약점도 있었지만 실력으로 극복해낸 현장형 인재였다. 종회와 달리 등애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전선에서 보냈다. 기획 단계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막상 전장에 투입되자 촉나라의 급소를 찔러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큰 성공에도 불과하고 전쟁 후 이들을 기다린 결말은 여러모로 씁쓸했다.


일등공신은 등애였다. 종회는 15만 명이 넘는 본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강유에게 막혀 검각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종회는 심각하게 후퇴를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등애가 자처해 1만 명 규모의 별동대를 거느리고 강유의 본대를 우회해 뒤를 찔러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종회는 난처했다. 원정을 기획한 당사자이자 총사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애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빼앗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회는 위기를 정치로 만회하려고 들었다. 전쟁의 결과를 보고하는 대장의 권한을 이용해, 사마소의 업적을 찬양하는 듯 보이지만 진짜 목적은 자신의 공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올려 사도의 직위를 얻어냈다(고대 중국의 최고 벼슬 중 하나로 내치의 1인자에 해당한다). 반면 등애가 세운 공은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종회의 지원이 있었기에 성공한 것으로 폄하되었다.


하지만 종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등애가 반란을 꿈꾸고 있다고 모함해 죽음으로 몰고갔다. 기록에 따르면 종회는 사마소와 등애가 주고 받은 서신을 가로채 내용을 조작했다고 한다. 사마소 역시 애초부터 불편한 존재인 등애가 큰 공을 세운 걸 마냥 좋아할 수 없었기에 이를 묵인했다.


하지만 종회 역시 비극적 결말을 피하지 못했다.


사마소가 냉정하게 등애를 버리는 모습에서 다음은 자기라는 걸 예감한 것일까, 아니면 허위보고가 들통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까? 종회는 순순히 군대를 해산하는 대신 반란을 획책했다. 자기가 거느린 군대에 항복한 촉나라의 군대를 더하면 위화도 회군 같은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소는 등애를 믿지 않은 것처럼 종회 역시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종회의 개선식을 준비하는 대신 정예병 10만 명을 모아 국경선에 배치했다. 종회의 기습적인 회군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애초에 종회는 부대 장악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휘하의 군대는 순식간에 칼을 거꾸로 빼어 들었다. 촉나라 군대야 애초부터 종회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었으니 도와줄 리 만무했다. 결국 종회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이 모든 상황을 유발한 건 사마소였다. 배경과 능력이 다른 거물급 인사 두 명에게 촉나라 정벌이라는 동일한 전략 목표를 부여했을 때부터 이미 파국은 예정되어 있었다.


측근인 종회가 명목상 사령관이었으며 훨씬 더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와 경험, 군부 내 계급은 모두 등애가 위였다 (등애는 정서장군으로 4스타, 진회는 진서장군으로 2~3스타급이었다).


두 사람의 권한과 역할이 명확한 것도 아니었다. 등애가 기습전을 주장했을 때 종회는 반대했다. 전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총사령관이 반대하면 그만둬야 하는데, 등애는 종화를 무시하고 자기 판단대로 군을 움직였다.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지만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같은 목표를 놓고 역할과 위계 질서가 불확실하니 성과 독점을 위한 경쟁은 필연적이었다.


아마도 사마소는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버지 사마의, 형 사마사에게서 권력을 상속받은 사마소는 자신의 권력 기반이 약하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2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남에게 맡기려고 하니 승리에 대한 갈증 이상으로 반란에 대한 걱정이 깊었을 것이다 (당시 위나라의 전 병력은 약 40만 명 정도였다). 그 결과는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형적인 인선이었다. 일단은 이겨야 하니 등애를 써야 하는데, 그가 마음대로 활보하지 못하게 견제하려다 보니 종회를 쌍두마차 구조로 기용한 것이다.


애초에 두 사람은 서로 재능이 달랐다. 등애는 독자적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실무형 현장 전문가다. 반면 종회는 전형적인 중앙 엘리트로 기획과 정치가 특기였다. 실제로 성과를 낸 건 등애였지만 성과를 정치적으로 포장하는 능력은 종회가 월등했다. 부족한 통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사마소에겐 등애가 이겼다는 소식보다 종회의 화려한 보고서가 더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업무 분장과 평가 기준이 불투명하면 종회 같은 이들이 득세하게 되어있다.


만일 사마소가 각각에게 명확한 임무와 권한, 그리고 투명한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면 둘 사이에 건강한 경쟁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서로의 공을 빼앗기 위한 소모적인 경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등애는 종회의 움직임을 무시한 체 자신이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에 집착했다. 그러자 종회는 아예 등애를 죽여 그 공을 빼앗아 버렸다. 이처럼 기준이 불분명할 때에는 직접 성과를 내는 것보다 내부 정치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모든 책임은 리더였던 사마소에게 있다. 의심하는 지도자에게는 부하들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충성심은 사라지고 오직 수지타산만 남게 되며,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진실은 은폐되고 그 빈자리를 왜곡된 보고가 채우게 된다. 등애가 무리해서 실적을 내려고 한 것도, 종회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반란을 선택한 것도 모두 리더의 의심 때문이었다.


사마소는 둘이 서로 견제하게 만들면 자신의 권력이 안전해질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마소가 두 거물을 손쉽게 제거하고 전공을 독점했다며 탁월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음, 글쎄? 겉으로 그렇게 보일지 모르나 사마소 역시 결국에는 비극적 결말을 벗어나지 못했다. 둘이 사라진 이후 권력의 중추로 떠오른 인물은 가충이다. 그는 윗사람의 뜻에 편승하는 철저한 예스맨이자 아래사람에게 업적을 빼앗는 데 뛰어난 정치꾼의 전형이었다. 최소한 참모로는 쓸만했던 종회와 달리 가충은 자기 생각이 담긴 기획서 하나 쓸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결국 사마씨가 세운 진나라는 가충과 그 딸이 대를 이어 저지른 폐단으로 인해 망하게 된다.


사마소가 부하들을 대하는 태도가 온 세상에 알려진 이상, 사마소의 곁에는 가충 같은 인간들만 남게 되었다. 사마소의 아들인 사마염이 왜 자기에겐 제갈량 같은 인재가 없냐고 한탄하자 ‘등애도 포용하지 못했으면서 제갈량을 찾는다’고 조롱을 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다시 등애와 종회의 일화로 돌아가면, 사마소가 제대로 된 리더였다면 다음과 같이 조치해야 했다. 그랬다면 아마 최악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첫째, 둘 사이에 확실한 위계질서를 둔다. 나폴레옹이 말한 것처럼 평범한 장군 한사람이 지휘하는 군대가 두 명장이 함께 지휘하는 군대보다 강한 법이다. 종회에게 자질이 있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종회에게 총괄 역할을 맡겼다면 등애가 보고 라인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직접 상소를 했을 때 단호하게 끊어내야 했다.


둘째, 전쟁의 모든 책임을 총괄 한사람에게 귀속시킨다. 보고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잘되면 내 덕분 안되면 네 탓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왜곡할 수 있었다. 이기든 지든 그 책임은 총괄의 것이라는 걸 분명히 함으로서 서로 공을 다투는 상황을 사전에 막아야 했다.


셋째, 각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한다. 주력 부대를 거느린 종회는 강유를 붙들고, 군대가 적은 등애는 현장에서 기회를 만들어내는 게 역할이라고 처음부터 확실히 정해주었다면 굳이 종회가 등애를 시기할 필요도, 강유를 상대로 성급한 공격에 나섰다가 피해를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후 처리는 총사령관인 종회의 역할이라는 걸 처음부터 확실히 정해주었다면 등애가 점령군 행세를 하다가 오해를 자초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넷째, 투명한 성공과 보상 기준을 설정한다. 공을 세웠지만 미래가 불안했던 등애는 기존 근무지로 복귀하지 않고 촉나라에서 미적거리다 화를 불렀다. 공이 부족했던 종회는 등애보다 더 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반란을 택하고 말았다.


하긴, 애초에 사마소 본인의 정당성 부족이 원인이었으니 이러한 가정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실력주의라고 해도 여전히 명분이란 게 중요한 이유다. 특히 리더급일 경우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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