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가 된 성공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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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베네로 유명한 김선권 대표는 20대 때부터 게임 유통, 감자탕, 베이커리, 햄버거, 패밀리 레스토랑, 애견 카페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마케팅과 트렌드 편승에 올인한 그의 스타일은 카페베네의 성공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실버타운 사업을 벌이다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 이후 근황은 전해진 바 없다. 한때 성공한 경영인으로 꼽혔던 인물의 씁쓸한 결말이다.


251년, 사마의가 죽고 아들 사마사가 대장군 직을 계승했다. 바로 다음 해인 252년, 오나라에서는 손권이 죽고 제갈각이 섭정을 맡았다. 둘 다 겉으로는 신하였지만 사실상 일인자였으며, 이제 막 정상에 올라 정당성이 취약했기 때문에 큰 업적에 목말라 있었다. 그 결과 두 사람이 충돌한 것이 252년 동흥 전투였다.


먼저 도발한 쪽은 제갈각이다. 그는 위나라 코앞인 동흥에 제방을 지어 위나라를 자극했다. 이때 기록을 보면 위나라의 중진 대부분이 사마사에게 공격을 권했다. 유일하게 상서령 ‘부하’만이 반대했는데, 제방은 오나라의 함정이니 말려들면 안 되며 대치 국면을 장기화해 소모전으로 몰아가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마사는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에게 이 싸움은 전술적 측면보다 자신의 승계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측면이 더 중요했다. 당장 화려한 승리가 간절했던 사마사에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부하의 제안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중진들도 사마사의 조급함을 읽었기 때문에 입을 모아 공격을 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는 참담했다. 위나라는 보란 듯이 제방을 분쇄하는 데 집착한 나머지 지극히 예측 가능한 움직임을 보였다. 제갈각은 뻔히 예상되는 루트로 몰려오는 적을 불시에 기습해 대승을 거두었다.


전투 이후 두 지도자의 명운은 갈렸다. 제갈각은 행정권을 넘어 군권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반면 사마사는 불만과 비아냥에 둘러싸여 위태로운 입지에 놓였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는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사마사는 재기에 성공해 훗날 새로운 왕조인 진(晉)이 세워지는 토대를 닦았다. 반면 제갈각은 동흥에서의 승리에 취해 또다시 모험을 감행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가 멸망한 것이 253년이었으니, 인생의 절정에서 추락하는 데 1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동흥에서 패한 사마사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본인과 동생 사마소의 벼슬을 낮추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차원에서 일부 지휘관들의 임지를 바꾸는 선에서 전후 처리를 마무리했다. 패배의 충격에 폭주하지 않고 벌어졌던 일을 침착하게 복기했다.


반면 제갈각은 동흥에서의 승리에 깊이 취해 버렸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만 명의 대군을 모아 위나라 원정에 나섰다. 목표는 요충지인 합비였는데 이곳을 지키는 병력은 3천 명에 불과했다. 동흥에서 제방을 미끼로 적을 유인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합비를 미끼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노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큰 실책이었다.


전에는 제갈각이 지키는 입장이었다. 반면 이번에는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대군이어서 보급 부담이 컸다. 무엇보다 기습 효과를 누렸던 동흥 전투와 달리 이번에는 모든 움직임이 노출된 상태에서 싸워야 했다. 이처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제갈각은 동흥에서 느꼈던 대박의 쾌감을 잊지 못하고 과거의 공식을 그대로 반복했다.


공격은 속도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제갈각의 군대는 싸움이 길어질수록 점점 피폐해졌다. 3개월 가까이 허송세월을 보낸 뒤, 그제야 합비라도 손에 넣기 위해 공격에 나섰지만 이미 방어 태세를 갖춘 뒤라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후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지만 제갈각은 반대하는 목소리를 찍어 누르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오나라는 지친 상태에서 위나라의 결정타를 맞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후퇴해야 했다.


하지만 제갈각은 끝까지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진 것이 아니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황제가 여러 차례 소환장을 보내자 어쩔 수 없이 돌아온 뒤에는 패배의 원인을 남에게 미루는 추태를 부렸다. 결국 신망을 잃은 제갈각은 모두의 묵인하에 정적에게 암살되었다.


동흥에서의 승리는 사마사의 오판 (만일 사마사가 지구전으로 나왔다면 제방에 발이 묶여 있던 오나라 쪽이 불리했을 것이다), 유리한 날씨 (기습을 결정한 날에 운 좋게 비가 내렸다), 정봉과 주의의 활약 (정봉은 합비 공격 시 불참했고, 주이는 도중에 후퇴를 주장했다가 제갈각에게 파면됐다) 등 여러 변수가 더해진 결과였다.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제갈각은 순전히 자신의 재능 덕분에 이겼다고 착각했다. 그 결과 과거의 성공 공식을 만능으로 여기게 되었고, 혼자 전면에 나서 의사결정권을 독점했으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능한 것으로 치부했다. 성패를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일이 풀리지 않자 감정을 앞세우고 남을 탓했다.


반면 사마사는 패배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제갈각이 쳐들어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촉나라가 빈틈을 노릴 것을 대비하는 모습에서 훨씬 넓어진 시야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측근 위주의 운영에서 벗어나 옳은 말을 할 줄 아는 ‘부하’, ‘우송’ 같은 참모들을 중용하고, 정파가 달라 불편한 사이였던 ‘제갈탄’까지 포섭해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적의 도발에 휘둘리지 않았고 장기전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또한 중앙의 정치적 판단이 현장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직접 전투에 개입하는 일을 줄이고 배후에서 자신의 강점인 정치와 조직 운영에 집중했다.


인생은 한 번의 승리나 패배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승리와 패배를 대하는 자세다. 운 좋게 얻은 승리는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 괜히 ‘젊어서의 성공, 중년의 상처, 노년의 가난’을 인생의 3대 재앙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지식인사이드 ‘LG그룹 권영수 전 부회장’ 편을 봤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다음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나의 실력이 100점인데 평가가 80점이라면 기회이고, 120점이라면 위기다. 전자라면 앞으로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고, 후자라면 곧 실력이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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