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코소보, 유럽의 시한폭탄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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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경기도만 한 크기의 이 작은 나라는 90%가 넘는 이슬람교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를 모국으로 여기는 나머지 기독교 인구 사이에 뿌리깊은 분노가 깔려 있다.


역사적으로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영토에 속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통치 동안 알바니아인들이 대거 이주한 결과 인구 구성이 복잡해졌다. 이후 이곳은 세르비아의 주도 하에 세워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래도 티토 대통령 시절까지는 민족끼리 공존하는 게 가능했다. 애초에 티토 본인이 순수 세르비아인이 아닌 혼혈이었고, 당시는 이념이 ‘인종의 차이를 압도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더 이상 공산진영의 단결이라는 호소가 통하지 않게 됐다. 티토의 후임자들은 점점 더 민족주의 경향이 강해졌고, 소수민족들이 이에 반발함으로써 10년간(1991~2001)의 전쟁 끝에 나라가 여러 개로 찢어졌다(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 코소보). 이 과정에서 가장 분쟁이 심했고, 여전히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게 바로 이곳 코소보다.


코소보 전쟁(1998~1999)은 NATO가 본연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몇 안되는 사례 중 하나였다. 세르비아(당시에는 아직 유고슬라비아였다)가 코소보 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자 미국과 유럽은 신속히 실전병력을 도입해 세르비아 군을 국경 밖으로 밀어냈다. 뇌사 상태에 놓은 오늘날의 NATO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후 코소보는 10년간 UN이 관리한 뒤(신탁통치?) 오늘의 코소보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이처럼 나름 깔끔했던 조기 종전과 달리 사후 처리는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코소보 공화국은 인구가 150만명에 불과하다. 세르비아(700만명)가 다시 도발할 경우 혼자서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세르비아의 반대 때문에 NATO에도 EU에도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방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진작에 ‘고토 회복’ 을 노리는 세르비아 군이 진입해 들어왔을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 무슨 전쟁이냐고 할 수 있지만 현지의 분위기는 심각하다. 코소보 공화국이 세워지자 이곳에 남아있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소수인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공수만 바뀌었을 뿐 과거의 인종차별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세르비아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분리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2023년에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무력 충돌이 터지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NATO 병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이후로도 두 나라 간에는 서로를 자극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절반이 넘는 세르비아 국민들이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해선 안되며 언젠가 되찾아야 할 땅이라고 여긴다.


대외여건도 좋지 않다. 코소보를 인정하는 나라는 UN 회원국 가운데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인접국 상당 수와 브릭스 5개국이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다. 소수민족 분리독립 시도로 골치를 앓고 있는 스페인, 세르비아와 심정적으로 가까운 그리스도 코소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믿을 건 오직 자유세계의 강력한 결집과 지지인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NATO는 과거에 보여준 결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태 악화를 바라지 않는 서방은 갈수록 세르비아 못지 않게 코소보에게도 절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곳이 자칫 신냉전의 무대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소보 전쟁의 여파로 세르비아는 적극적인 친러 국가가 되었다. 반면 세르비아는 뿌리깊은 친미 국가다.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을 국가이니 어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단.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세르비아에 우호의 제스처를 보내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데 이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하나의 변수는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연대. 애초에 코소보가 알바니아계의 자치를 위해 세워진 나라인 만큼 둘의 관계는 끈끈하다. 두나라의 합하면 국력에서 어느정도 세르비아와 대등해진다. 하지만 둘이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예를 들어 ‘연방’ 구성)은 발칸 반도에 복잡하게 깔려 있는 민족 문제가 연달아 터지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알바니아계가 뭉친다면 다른 민족들도 비슷하게 나올 게 뻔하기 때문.


지난 12월, 코소보에서 열린 총선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쿠르티 총리가 승리했다. 그는 강경한 민족주의 정책으로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갈등을 중재하려는 서방 국가들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자칫하면 그의 당선이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변수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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