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바보도, 호구도 아니다
걸프 국가들의 우주산업은 더 이상 상징적·일회성 프로젝트에 머무르지 않고, 전략적인 생태계로 전환되고 있다.
우선 그 규모를 보면, 현재 930개 이상의 우주·방위 관련 기관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중 사우디가 253개, UAE가 215개를 차지해 사실상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등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며 위성통신(SATCOM)에 집중된 구조를 띠고 있다.
위성 보유 수에서도 UAE가 11기로 가장 많고 사우디(9기)가 그 뒤를 잇는다. 나머지 국가는 각 1기 수준이다. 체감상 이 지역 우주 활동의 ‘최소 80%’는 사우디와 UAE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체면 중심(prestige-driven)’에서 ‘실용적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이다. 걸프 국가들은 이제 단발성 미션이 아니라 경제성을 확보한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주권과 상업적 확장성이 핵심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걸프 지역에서 우주는 국가 브랜드 수단을 넘어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관측 자산의 집중도가 높은데, 기존에 도입한 GEO 위성과 자국 주도로 개발할 신규 LEO 위성을 연계해 다중 궤도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UAE는 2025년에만 Thuraya-4, MBZ-SAT, Etihad-SAT, Arab Satellite 813을 발사하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주는 각국의 국가 비전에도 깊이 내재화되어 있다. 사우디 비전 2030, UAE 국가 우주 전략 2030, 오만 비전 2040은 우주를 경제 개혁과 국가 안보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주권’의 정의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산(위성) 소유권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임무 통제(tasking), 데이터 접근권, 업그레이드 권한 등 전반적 통제권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앞으로 이 지역에 진입하려는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십을 제안해야 한다.
지구관측 분야는 특히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각각 국가대표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감시·정찰 자산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곳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이제 외부 기업은 자신의 기술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략적 스토리 안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산업화 노력도 활발하다. 사우디와 UAE는 우주 액셀러레이터와 경제 특구 지정 등을 통해 정부의 역할을 ‘조율자’로 축소하고, 그 빈자리를 기업이 채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직은 해외 기술을 단순 중개하는 수준에 그치는 기업이 대부분이지만, 최근 들어 기술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곧 이들 ‘국가대표’ 기업들이 시장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과의 협력 없이는 시장 접근 자체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발사체는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지만 아직 완전한 독자 발사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다. 발사는 지속적 수요가 확보되어야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중동에서 들려오는 발사체 관련 뉴스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탐사. UAE는 심우주 탐사가 국위 선양을 넘어 과학 자본과 인재 육성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션을 산업 전략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발사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 역시 당분간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부족한 인적 자본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교육과 인재 유입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인력 교류나 기술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더욱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
결론: 걸프 지역의 우주 산업은 이제 상징적 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업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사우디와 UAE라는 두 개의 핵심 축이 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글로벌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만, 핵심 요소(특히 데이터)는 어떻게든 현지화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따라서 이러한 현지화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추가) 최근의 기술적 도약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관된 제도, 명확한 절차와 규제, 그리고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투자 발표나 기술 혁신이 아니라 거버넌스가 이곳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