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이미 졌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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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이미 졌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가 될 거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유리한 협정을 맺고 이긴 것처럼 의기양양해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전쟁의 승자는 평화협정을 맺을 때가 아니라 전쟁이 남긴 걸 직면할 때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그동안 푸틴은 냉전 이후 미국이 만든 질서를 비판해 왔다. 푸틴의 패권적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하나의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정점에 서있는 게 ‘이기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찬’ 미국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역사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푸틴이 그토록 비판하던 체제를 바로 미국 스스로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다극 질서의 복귀를 목격하고 있다.


푸틴은 이러한 변화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러시아가 당당한 강대국으로써 유라시아를 자기 영역으로 인정받을 거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푸틴이 그토록 비난해 온 국제 질서가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한계를 가려주는 역할을 했던 게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방대한 핵무기, 풍부한 자원,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리는 거대한 영토를 과신했지만 정작 러시아의 상대적 쇠퇴를 막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미국과 중국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한때 미국과 경쟁했던 기술력도 1군에서 뒤쳐진 지 오래다. 미국, 중국에 이은 넘버3로 러시아 대신 인도를 꼽는 이가 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그동안 야성을 봉인하고 살았던 강대국들이 본격적인 군비 증강에 나서면 그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과 넓은 영토도 무질서가 심해질수록 자산보다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 작동했던 안전장치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러시아는 불안해질수록 더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에 집착하고 있다. 부쩍 힘이 쌔진 중국과 함께 다니며 ‘호가호위’하는 기분을 즐긴 것. 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면서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러시아 입장일 뿐, 중국에게 있어서 둘의 관계는 그저 확실한 갑이 존재하는 거래관계일 뿐이다. 중국은 따로 선택지가 없는 러시아를 작정하고 착취하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중국과 연결하는 가스관 프로젝트가 가격을 둘러싼 이견으로 지연되고 있다. 이미 러시아는 국제 시세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중국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는데, 중국은 그 이상의 추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 국내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만일 사실이라면 거저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중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러시아에 파는 드론에 3~4배의 웃돈을 얹고 있다. 중국의 대러 투자도 지지부진한 수준. 빠져나간 서방의 자본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모든 논란들은 중국이 러시아를 대등한 동맹이 아닌 용병 (또는 호구)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러시아는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패배만이 기다릴 뿐이다. 단지 시나리오에 따라 승자가 달라질 뿐 (미국? 중국? 유럽? 인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적인 것처럼 보였던 러시아군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으며, 백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낳아 취약했던 러시아의 인구 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 설령 영토를 좀 넓힌다 해도 전쟁으로 파괴되고 주민들이 떠난 황폐한 땅일 뿐이다. 러시아에겐 이곳을 개발할 수 있는 인구도 재원도 없다. 애초에 러시아가 땅이 모자라서 미래가 어두운 게 아니지 않은가?


푸틴이 그토록 원했던 국제 질서의 약화는 러시아의 부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질서는 러시아를 보호해 주던 완충제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푸틴이 그토록 원했던 다극 체제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지만, 이는 러시아를 강대국의 반열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주변국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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