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양호'의 리더십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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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같은 리더는 X>


후반부에 활약한 인물이라 덜 알려져 있지만, 양호는 삼국지의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다. 명문가 출신에 재능과 인품을 겸비했고 외모도 좋아 어디 하나 부족한 구석이 없었다. 굳이 꼽는다면 12살에 아버지를 잃은 게 흠이었지만 태상(종묘를 관리하는 벼슬)까지 오른 숙부 밑에서 귀하게 컸기 때문에 딱히 큰 흠도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양호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평생 한 번도 초조함에 판단력을 잃거나 정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최고 권력자인 조상이 그를 등용하려고 했으나 양호는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양호의 예측처럼 조상과 그 측근들은 얼마 안 가 사마씨에게 멸족을 당했다. 사마씨도 양호를 불렀지만 이번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함부로 나섰다간 혼란스러운 정국에 휘말릴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양호는 사마소가 대장군이 되자 비로소 벼슬에 올랐다. 이때 그의 나이 34세. 누구라도 초조할 나이였지만 양호는 무리해서 지름길을 걷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최고 권력이 조상,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로 옮겨 가면서 출세에 눈이 먼 영재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지만 양호는 무사할 수 있었다.


벼슬에 오른 뒤에도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사마소가 공작의 지위를 내렸으나 이를 사양해 한 단계 아래인 후작이 되었다. 양호의 비범함을 질투한 종회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자 맞서지 않고 피했다. 종회가 사마소의 최측근이자 명문 귀족이었지만 양호도 크게 꿇리지 않았다(어머니가 대학자 채옹의 딸이고 누나는 사마사의 후처였다). 하지만 양호는 지방직을 자청해 몸을 피했다. 얼마 안 가 종회는 자기 야심에 취해 폭주한 끝에 자멸했고, 곧 양호도 조정에 복귀했다.


이후 정남대장군에 봉해져 형주에 주둔했는데, 재임 기간 동안 한 번도 무리를 하거나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 양호는 군 지휘권을 맡은 게 이때가 처음이라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컸을 것이다. 게다가 촉나라가 이미 망해 오나라만 꺾으면 천하 통일이니 한판 승부에 대한 갈망도 강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이미 5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양호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형주를 전시 체제에서 평시 체제로 전환했다.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농지를 개간해 10년 치 군량을 모았다. 심지어 오나라와의 상거래를 허용하기까지 했다. 적장인 육항과 주고받은 신사적인 제스처에도 개인적 호감 아래 소모적인 싸움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형주는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위나라와 오나라는 모두 형주를 거대한 병영처럼 운영했다. 백성들은 틈만 나면 끌려가 훈련과 공사에 동원됐다. 전쟁이 임박하면 적에게 ‘노동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통금 제한 등 일상 속 통제도 심했다. 양호는 오랫동안 힘든 삶을 살아온 형주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심지어 형주 남쪽의 오나라 백성들도 양호를 ‘양공’이라 칭하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기반이 되었다.


양호가 민정에만 신경 쓴 건 아니다. 육군만으로는 오나라 점령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대규모 해군 구축에 나섰다. 또한 자기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미리 ‘왕준’과 ‘두예’를 발탁해 키웠다. 두 사람은 양호가 죽고 2년 뒤 오나라를 공격했는데, 승리까지 불과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양호가 처한 입장에서 단기 실적에 홀리지 않고 장기적 기반에 집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221년생)보다 어린 종회(225년생), 배수(224년생)가 활개 치고 다녔지만 함부로 나서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화려한 정복자의 타이틀은 후배들에게 양보했지만, 그 승리를 가능케 한 이가 시간을 아군으로 만든 양호였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양호는 ‘내 재임 중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소용없다’, ‘수습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의 사고와 거리가 멀었다. 그의 리더십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강철처럼 단단했다. 갈수록 리더십 교체 주기가 짧아지는 (길어야 5년)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양호 같은 리더를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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