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잠자는 용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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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들이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동안 애플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어떤 이들은 애플을 AI 경쟁의 낙오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최근 산업계는 AI 성능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처럼 돌아가고 있다. 다들 더 큰 모델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애플은 상대적으로 절제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게 반드시 애플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가 아닌 ‘최적’을 노린다>

애플은 뭘 최초로 발명한 적이 없다. 전에도 MP3 플레이어는 존재했지만 iPod은 틈새 시장을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바꾸었다. iPhone은 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재정의했다. Apple Watch은 매니아 제품을 주류 시장으로 끌어올렸다.

애플은 먼저 뛰어들지 않는다. 남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술의 윤곽을 잡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러다 맞는 때가 오면 최적화와 사용자 경험, 그리고 생태계의 힘을 내세워 시장을 휩쓸었다. 어쩌면 애플 입장에서는 AI도 과거에 등장한 신기술과 다를 게 없을지도.

<‘CapEx’가 반드시 ‘혁신’에 쓰이는 건 아니다>

애플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CapEx가 낮다는 점이다. 그러나 CapEx는 주로 데이터센터, 서버, 땅 같은 물리적 투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CapEx가 높다고 반드시 혁신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볼 순 없다.

애플의 경쟁력은 최대 규모의 클라우드 사업자라는 데에서 나온 게 아니다. 애플은 Google, Microsoft처럼 광고나 자사 클라우드를 사수해야 하는 곳들과 입장이 다르다. 구글에게 AI는 검색 사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기업고객 Lock-in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아마존에게는 클라우드 사업을 지키기 위한 핵심이다.

하지만 애플은 입장이 좀 다르다.

설령 애플이 AI모델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은 AI 활용을 위해 아이폰을 구매할 것이다. AI는 애플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는 게 오히려 강화한다.

해자는 ‘생태계’이지 ‘모델’이 아니다

지금 AI 붐은 두 가지 해자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굴러가고 있다. 하나는 독점적 대형 모델, 다른 하나는 이를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 인프라다. 그러나 둘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취약할 성벽일 가능성이 있다.
오픈소스 성능이 빠르게 쫓아오면서 선두주자들과 격차가 줄고 있다. 하드웨어 역시 공급이 확대되고 경쟁이 심해지면 점차 범용화 될 수밖에 없다. 결국엔 ‘최고의 성능’보다는 ‘최적화’와 ‘활용도’가 승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걸 누구보다 잘하는 게 애플이다. 애플의 솔루션은 HW, SW, 서비스, 브랜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핵심은 가장 강력한 모델을 보유하는 게 아니라 AI를 효율적이고 프라이버시 친화적 기기에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다.
iPhone이 좋은 예다. 시간이 지나며 스마트폰 기기는 범용화 되었고, 이제는 단순 스펙만으로 가격 프리미엄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졌다. 애플의 수익성을 지탱하는 건 아이폰 성능이 아니라 생태계를 통한 사용자 Lock-in이다.

<돈>

또 하나 간과되기 쉬운 문제는 수익성이다. 생성형 AI는 학습과 운영에 막대한 돈과 에너지가 든다. 과연 그에 비례하는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혁신이 반드시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혁신 기술들이 사회 전반을 이롭게 했지만, 정작 그 기술을 소개한 주인공들에겐 국물도 돌아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AI가 보편화된다면 소비자와 다양한 산업들이 그 혜택을 보겠지만 수백조원을 투자한 기업들이 그만큼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온디바이스 AI>

애플은 DNA부터 AI 열풍과 엇갈리는 부분이 많다. 대형 LLM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 구축을 통해 성능을 구현한다. 반면 애플은 프라이버시의 수호자를 자처해왔다.

이러한 간극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로 온디바이스 AI다. 애플이 자체 설계 실리콘을 구축한다면, 즉 개인 기기에서 직접 AI를 구동할 수 있게 된다면 프라이버시 위험을 줄이고 대규모 데이터센터 의존을 극복할 수 있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이는 기술로 개인을 해방한다는 애플의 신화와 맞닿아 있다.

어쩌면 애플은 GPU 물량 경쟁 대신 전력 대비 성능 극대화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낮은 CapEx는 소극성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기다림의 위험>

물론 기다림에는 위험이 따른다. Nokia는 한때 시장을 지배했지만 플랫폼 전환을 읽지 못했다. Microsoft는 모바일에 늦게 진입해 낭패를 봤다. 뭐든 타이밍이 생명이다. 이르면 위험하고 늦으면 기회를 잃는다.

그러나 AI는 스마트폰과 다르다. 모바일은 기존의 컴퓨팅 산업을 대체한 반면, 현재의 AI는 모바일을 대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한다. 사람들이 AI를 활용하라면 여전히 기기와 OS,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애플은 전 세계 수억 대의 기기를 통제하고 있다.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애플이 뒤처졌다고 말하는 건 목표가 ‘AI 모델 주도’라고 전제할 때 그렇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애플의 장기는 신기술을 일상적인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당연해 보이게 만드는 거다.

AI는 이제 막 첫걸음을 띈 단계다. 그 기술이 놀라운 건 맞지만 반드시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순 없다. 현재의 하드웨어 프리미엄과 가치평가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AI가 저렴한 인프라로 자리 잡으면 (언젠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치는 활용의 영역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애플이 강했던 분야이기도.

지금 애플은 마치 금은보화 위에 앉아있는 용처럼 보인다. 이런 애플을 놓고 '스마우그' 같다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애플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AI가 ‘쇼’가 아니라 진짜 ‘제품’이 되는 순간이 다가와야 비로소 밝혀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애플은 온갖 유행이 범람했던 코로나 때에도 경쟁자들에 비해 굼뜬 모습을 보여 질책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론 위험한 거품들을 피하고 실속을 야무지게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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