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주인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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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주인>


‘문앙’은 삼국지 후반부를 대표하는 맹장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지 못해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그는 나쁜 주인의 세 부류인 ‘무능한 주인’, ‘나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 마지막으로 ‘나를 미워하는 주인’을 차례로 겪었다.


그의 첫 주인은 아버지인 ‘문흠’이었다. 문흠은 위나라의 장군이었는데 사마씨가 집권해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문흠은 도량이 작고 무능했다. 문앙이 소수의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을 휘저었지만 문흠이 제때 합류하지 못해 패했다. 문앙이 이때 남긴 활약으로 전설이 된 것을 감안하면 (사마소가 죽은 이유가 문앙 때문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질 정도), 문흠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주인은 오나라의 실권자였던 ‘손침’이다. 싸움에 진 문흠 부자는 오나라로 망명했다. 얼마 후 위나라에서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손침은 문흠 부자를 원군으로 보냈다.


합리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제갈탄과 문흠은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다. 앞서 문흠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마씨를 도와 진압군의 선두에 섰던 게 제갈탄이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원군으로 보낸 건 애초에 문씨 부자를 소모품으로 보고 ‘잘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문흠은 얼마 안 가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문앙이 저항하려고 했지만 손침이 준 병력이 항명하고 나섰다. 처음에 병력을 내줄 때부터 손절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문앙의 마지막 주인이 된 건 ‘사마씨’였다. 사마소는 갈 곳을 잃은 문앙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모두들 그를 죽이라고 했지만 사마소는 정치적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문앙을 데리고 제갈탄이 지키는 성을 돌면서 ‘문앙도 죽지 않았으니 너희도 두려워 말라’며 항복을 유도했다. 얼마 안 가 제갈탄의 무리는 무너졌다.


하지만 이때 사마소의 발언에서 그가 문앙을 곱게 보지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이후 10년이 넘도록 문앙에 관한 기록이 끊긴다. 항복을 받아 주긴 했지만 철저히 아웃사이더 취급을 한 것이다.


문앙이 다시 등장하는 건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난이다. 독발수기능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대장들이 연달아 패배해 서쪽 국경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때 최후의 카드로 투입된 게 대장 사마준, 선봉 문앙의 조합이었다. 문앙은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선비족을 상대로 생포자가 20만 명이 넘는 대승리를 거뒀다. 오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처음 상대하는 지형과 적에게 대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사마씨의 의심은 여전했다. 진나라는 반란에 골치를 앓으면서도 문앙을 소환할 때까지 무려 8년을 망설였다. 문앙의 활약으로 적의 기세가 꺾이자 지휘관을 빼앗아 ‘양흔’에게 줬다. 문앙의 활약 덕분에 반란은 1년 뒤 진압됐지만, 그 과정에서 무능한 양흔은 독발수기능에게 역공을 당해 전사했다.


큰 공을 세운 걸 부정할 수 없으니 ‘사마염’은 그에게 포상을 내렸다. 그런데 감사 인사를 하러 간 문앙을 만난 사마염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핑계를 대 벼슬을 빼앗았다고 한다.


무능한 주인은 혼란과 비효율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은 자신감을 갉아먹어 사람을 소모시킨다. 마지막으로 나를 믿어주지 않는 주인은 사람들을 굴레에 묶어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굴레를 더욱 팽팽하게 당겨 질식하게 한다.


굳이 셋 가운데 우열을 비교한다면 어땠을까?


그나마 나은 건 문흠이었다. 그는 비록 무능했지만 최소한 아들을 신뢰했다. 문앙이 좀 더 자라 성인이 되었더라면, 즉 아버지를 통제할 만한 권위가 생겼다면 둘은 괜찮은 듀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문흠이 죽었을 때 문앙은 19살이었다).


다음 자리는 손침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본인은 몰랐지만 손침에겐 문앙이 절실했다. 그는 오나라의 권력자였지만 기반이 약했다. 외부 영입 카드인 문앙은 손침에게 여러모로 쓸모 있는 존재였다. 만일 문앙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는 오나라에서 빛나는 삶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최악은 사마 일족이다. 애초에 사마씨는 문앙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의 최후는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었다. 손침과 달리 문앙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손안에 쥐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끝끝내 그 목에 메인 굴레를 풀어주지는 않았다.


무지는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머리로 풀 수 있다. 욕심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기 때문에 거래로 풀 수 있다. 하지만 증오와 불신은 가슴에서 자라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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