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걸쳐 하나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시대는 끝났으며 권력이 여러 나라에 분산되는 다극 체제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설을 넘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런 주장이 늘고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던 시기는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었으며 국제정치는 자연스럽게 다극 체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많은 신흥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미국 쇠락’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극화’의 의미를 둘러싼 전혀 다른 두개의 입장이 공존한다.
미국 행정부가 다극 세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미국의 영향력에 제한을 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미국 리더십의 성격을 재정의하는 논리적 근거가 될 뿐이다. ‘다극화’의 세계관을 받아들인 미국은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는 국제적 책임을 떠안을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다극화 담론은 국익 중심 외교를 위한 강화하는 명분이 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여러 신흥국들이 이해하는 다극화는 원탁회의와 같은 균형적인 세계관에 가깝다. 즉, 기존의 서구 주도의 제도를 벗어나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뜻한다.
다극화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0~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하자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의 ‘초강대국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우려를 이용해 미국에 대한 균형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재기하면서 많은 이들은 미국의 독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전망했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이러한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듯 보였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글로벌 개입에 피로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와 기술력은 위협적인 수준으로 발전했고,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무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출범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지금을 다극시대라고 부르는 건 시기상조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주요 외교 협상을 주도하며 광범위한 해외 개입을 단행해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저항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도전하고 있지만 미국의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엔 미치지 못한다. 유럽 역시 단일한 대응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초에 ‘다극 체제’에서 말하는 ‘극’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경제 규모가 크거나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서 ‘극’이 되는 건 아니다. 자기 영역을 벗어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기술과 금융 인프라, 일시적인 ‘단합’이 아닌 제도적으로 품고 갈 수 있는 동맹을 모두 갖춰야 비로소 하나의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모두 충족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이 ‘이란’에 하고 있는 (또는 비상시에 ‘대만’에서 할 수 있는) 걸 중국이나 러시아가 ‘캐나다’나 ‘멕시코’에서 하는 건 불가능하다.
중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힌다. 경제 규모는 미국의 약 3분의 2에 이르렀고, 군사력과 핵전력도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인구 감소, 국유기업 의존, 자본 통제로 인한 통화 국제화의 제약, 제한적인 동맹망 등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중국은 미국을 저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됐지만 미국에게 선공을 가할 수 있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
러시아의 한계는 더욱 뚜렷하다. 자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여러모로 한계가 뚜렷하다. 유럽연합은 경제력과 소프트파워는 상당하지만 정치, 안보 측면에서 제약이 크다.
반미 연합을 형성하려는 시도도 순탄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우방’이라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비대칭적 의존과 깊은 상호 불신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 외 반미국가들도 미국 의존을 줄이려 하면서도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인다.
최근 사례들은 미국의 우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무역 조치를 도입했을 때 대부분 맞대응 대신 협의를 택했다. 오직 중국만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활용해 대응했을 뿐이다. 중동과 중남미에서의 미국 개입 역시 제대로 된 저항은 보이지 않는다.
달라진 건 오직 미국의 태도다. 미국은 과거에 자신들이 내세웠던 가치와 명분이 아닌 힘과 국익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변화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이 여전히 유일한 종합적 ‘극’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전통적 책임을 상당 부분 내려놓는 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체제도, 일각의 반미주의자들이 꿈꾸는 체제도 아니다.
냉전 이후 국제 환경은 분명 변화했다. 경제력은 더 넓게 분산되었고 신흥국의 영향력도 커졌다. 그러나 미국과 동등한 극으로 부상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갖춘 국가는 아직 없다. 단극의 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단호한 일방주의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후발국들과의 격차를 다시 ‘압도적’으로 벌려놓을 때까지는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 변화가 극을 벌리는 데 효과가 있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