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위기는 곧 기회>
의외로 잘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이란 문제를 바라볼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튀르키예다.
튀르키예는 이란에서 고조되고 있는 갈등의 진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이란의 문제로 끝나든 아니면 중동 이대로 확산되든, 튀르키예는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는 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튀르키예는 이란 문제에 얽혀 있는 중동 국가들 가운데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존재다.
무슬림 국가이지만 NATO의 일원으로 서방 안보 체제에 편입되어 있다. 현역병 규모로 튀르키예는 NATO 멤버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다. 튀르키예는 서구, 걸프 지역의 이웃들, 심지어 이란과도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포지셔닝 덕분에 튀르키예는 중재자나 균형자, 상황에 따라서는 당사자로 이번 사태에 개입 가능하다.
튀르키예의 인구는 9천만 명에 달하는 데 (사우디의 2배), 이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 위에 세워진 견고한 국가 정체성을 공유한다. 완벽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최소한의 민주주의 요건을 만족하는 강력한 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국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원 의존형이 아닌 제조업 중심의 경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의 안정을 바라는 외부 국가들에게 튀르키예는 예측가능한 동시에 지속가능한 파트너다.
어떤 의미에서 튀르키예는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었다면 이란이 될 수 있었던 모습이다. 둘 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중동의 양강으로 존재해 왔다. 오스만 제국이 중동을 장악했을 때도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를 제압하진 못했다.
튀르키예와 이란 사이의 국경은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국경 가운데 하나다. 놀랍게도 17세기에 국경이 확정된 이후 두 나라는 직접 충돌을 자제하며 공존해 왔다. 서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둘은 꾸준히 이 지역의 영향력을 놓고 경쟁했지만 직접적인 전쟁은 가능한 피해왔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에도 이러한 대리전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둘은 중동 곳곳에서 서로 다른 세력을 내세워 경쟁하면서도 외교 채널을 유지하며 긴장 관리에도 신경을 써왔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시리아 내전이다. 2011년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자 튀르키예는 정권 교체를 지지하며 반군 세력을 지원했다. 반면 이란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이는 시리아 정부가 오랜 내전을 버티는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튀르키예는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튀르키예 영공을 향하다가 NATO 방어망에 의해 요격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튀르키예 정부는 이 사건을 크게 확대 해석하지 않으며 긴장 확산을 막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란 역시 자기들은 튀르키예를 존중하며 의도적으로 계획된 공격은 없었다며 꼬리를 빼는 모습이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강 건너 불 구경할 수 있을까? 역사상 중동에서 발생한 주요 위기는 예외 없이 튀르키예로 확산되었다. 시리아 내전 때 튀르키예는 30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야 했다. 만약 인구가 9천만 명이 넘는 이란에서 유사한 규모의 혼란이 발생한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경제적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튀르키예는 인플레이션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정부는 2028년 차기 선거 이전까지 경제 문제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이란 문제의 장기화는 이러한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튀르키예는 이번 위기가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이란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다면 그동안 두 나라가 대리전을 벌여온 여러 지역에서 권력 공백이 생기게 된다. 전쟁 전부터 이미 튀르키예는 이란의 쇠락을 기회삼아 시리아, 아제르바이잔, 이라크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튀르키예의 위상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미국은 중동에 무기한 머물 수 없으며 결국 뒷수습을 지역 강대국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데 이는 튀르키예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럽 역시 튀르키예를 필요로 한다. 튀르키예가 파수꾼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유럽은 동쪽뿐 아니라 남쪽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란도 튀르키예를 적으로 돌리는 건 재앙이다. 튀르키예는 군사강국일 뿐 아니라 필요할 때 무력을 쓰는 걸 망설이지 않는 나라다. NATO 멤버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국제전으로 키우게 될 수도 있다.
아마 튀르키예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복잡한 심정일 것이다. 튀르키예는 이 지역의 균형을 흔들 수 있는 나라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세력이 붕괴되면 튀르키예는 손쉽게 지역강국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튀르키예는 이란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전쟁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이란, 나아가 중동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튀르키예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역할을 노릴지에 따라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