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폴리의 아이러니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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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폴리>

보드게임 ‘모노폴리(Monopoly)’는 출시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대표적인 보드게임으로 사랑받고 있다. 게임은 땅을 사고 집과 호텔을 지은 뒤, 상대에게 높은 임대료를 받아 파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자산을 독점하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노폴리는 원래 독점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1903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엘리자베스 매기’는 ‘The Landlord’s Game’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그녀는 지주들의 토지 독점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반면 지주들은 임대료로 부를 갈취해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장을 책이나 강의로 전달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매기가 선택한 게 바로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게임에는 두 가지 룰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독점의 룰이었다. 플레이어들은 토지를 놓고 경쟁하며 임대료로 상대방을 파산시키면 된다. 모든 것을 차지한 마지막 한사람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두 번째는 공존의 룰이었다. 이 방식에서는 부가 공유되고, 누군가가 성공하면 모두가 함께 이익을 얻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독점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협력이 어떻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를 체험하길 바랬다.

이 게임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매기의 의도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점의 룰만 플레이했다. 상대를 파산시키는 경쟁이 더 긴장감 있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1932년, 세일즈맨 ‘찰스 대로’가 이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돈을 벌 가능성을 읽은 그는 게임을 자신의 발명품인 것처럼 포장한 뒤 1935년에 ‘파커 브라더스’에 팔았다. 회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노폴리’라는 이름으로 게임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대로는 최초의 백만장자 게임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후 최초의 창작자인 매기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회사는 500달러를 주고 그녀의 권리를 사들여 화근을 제거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충 1만불 정도).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그 체제를 찬양하는 상품으로 변질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고 확장해 이익을 내는 건 서로 다른 영역이다. 게임을 발명한 건 매기였지만 그것을 대량 생산하고 전 세계에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진 건 회사였다. 그런 의미에선 독점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철저히 영광에서 배제당한 매기를 떠올리면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혁신기업으로 알려진 애플과 구글, 아마존도 성공한 사업들을 추적해보면 아이디어의 기원은 엉뚱한 곳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21세기와 매기가 비판한 대지주의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땅과 건물이 자본과 플랫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테슬라는 머스크가 발명한 게 아니다).

매기가 만든 ‘독점의 룰’은 후반부로 갈수록 게임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일단 한 플레이어가 땅을 독점하고 건물을 세워 나가면 결과를 뒤집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기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시스템의 불공정을 떠올리는 대신 자기가 이기는 쪽이었을 때 (즉 착취하는 입장일 때)의 쾌감에 매료됐다.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건, 그게 체제이건 게임이건 간에,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승자독식의 원칙은 '강자들의 음모'를 넘어 인간의 타고난 본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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