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독일이 유럽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군집 통신위성 사업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온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가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 정도 체급이 되는 나라 중에 독자 통신위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는 나라는 단언컨대 ‘없다’.
최근 마크롱 대통령은 ‘Europe is mortal’, 직역하면 ‘이러다 유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연설로 화제가 됐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은 전쟁이 벌어지면서 생존에 대한 걱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변덕을 부려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는 우려가 폭발했고, 그 여파로 보안 등 민감한 이슈가 많아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던 범 유럽 통신위성 사업도 탄력을 얻었다.
Infrastructure for Resilience, Interconnectivity and Security by Satellite, 줄여서 IRIS2라고 부르는 다중궤도 군집 통신위성 프로젝트가 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약 8조 원의 재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약 200개의 위성으로 구성된 독자 통신망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 연초 개발에 착수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독일의 부총장인 Robert Habeck이 사업 재검토를 요청하고 나섰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돈이다.
현재 계획이 지나치게 비싸니 개발 컨셉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며, 독일이 얻는 것 대비 너무 많은 돈을 부담하는 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 그는 이미 진행 중인 범 유럽 관측사업인 ‘코페르니쿠스’와 항법시스템 ‘갈릴레오’에 집중하면서 IRIS2를 찬찬히 다시 따져보자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유럽의회의 정해진 절차를 밟아 여기까지 어렵게 진행된 걸 막판에 반대하고 나서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일의 주장도 입장도 이해는 간다. 본 사업에 입찰 의지를 밝힌 건 에어버스가 주도하는 ‘SpaceRise’라고 명명된 컨소시엄이 유일하다. 제안서를 낸 것이 지난 3월인데 경쟁자가 없다는 이유로 꼼꼼히 평가하지도 않고 업체들의 제안을 다 받아줘선 안된다는 것. 심지어 이들은 벌써부터 ‘예산을 약 30% 증액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경쟁이 없는 ‘슈퍼을’이기 때문에 통제하기도 어렵다. 일각에선 그마저 낙관적인 예상이며 실제론 2배 이상 들어갈 거라고 보기도 한다.
컨소시엄 멤버 가운데 독일 기업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독일은 비용 분담 기준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 유럽 우주개발의 양대 후원자다. 그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던 탓인지 이렇다 할 잡음이 없었지만, 아리안 차세기 개발이 지연되는 등 악재가 이어지자 ‘독일만의 독자 노선’을 추구하자는 소리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분위기를 보니 앞으로 그 진행이 순탄치 않을 듯하다. 이미 압도적 우위를 구축한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수천 개가 넘는 위성을 띄우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유럽은 잘해야 연말에나 업체 계약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어떻게 차별화해서 극복할지, 과연 ‘기술 자립’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