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늙음을 구별하는 법
믿음이 있으면 젊은 것이고, 의혹이 있으면 늙은 것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젊은 것이고, 두려워하면 늙은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젊은 것이고, 절망한다면 늙은 것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만들지만,
사라진 열정은 영혼에 주름을 만든다.
-가오위엔, <승풍파랑>
젊은 시절 사람들은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산다. 꼭 그래서는 아닐텐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누리는 행복과 행운, 축복받은 건강과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당연하게 여기며 안일하고 나태하게 살기도 한다. 젊음의 아름다움과 에너지에 취해 충동에 너무나 쉽게 무릎꿇고, 후에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것은 재고의 여지도 없이 내동댕이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두운 구석을 경험한다. 우울증이나 암이나 부상이나 사망이나 이별이나 폭력,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가득찬 그 곳을 경험한 그들은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세상의 밝음을 감탄하며 새삼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고통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 더 인정 많고 착하다고 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임에 분명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씌여있다. 분명 무언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어둠의 터널을 지난 사람들은 전보다 조용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혼자라는 것과 슬프다는 것과 어렵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운다. 젊을 때 사람들은 대개 더 붙임성 좋고 활발하지만 때때로 경솔하고 무신경하다. 화려함에 눈이 멀어 많은 소중한 것들을 저버린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 사람들 숫자는 줄지언정 편하게 만나는 이들은 늘고, 더 절친하며 안정적이다. 삶은 안정을 찾아 조화롭고 자기 자신과도 더 이상 파괴적인 다툼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상처에 취약하지만 회복력과 내공이 는다.
상처와 아픔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크고 작은 장애를 낳기에, 제대로 된 치유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아픈 곳을 확인하고 건드리고 그 상처를 딛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진정으로 용감해지는 법을 배운다. 자신의 나약함과 험한 기억을 마주하는 진정한 용기. 그렇게 그들은 씩씩해진다. 목청만 크고 어깨만 펴고 걸으면 되었던 씩씩한 어린이에서 씩씩한 어른으로 탈바꿈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나무가 악천후나 폭풍을 겪지 않고 자랑스럽게 하늘 높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불운이나 역경, 증오, 질투, 고집, 불신, 냉혹, 탐욕, 폭력 등은 이것들이 아니라면 덕의 위대한 성장이 불가능한 유익한 환경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나약한 천성을 지닌 자를 멸망케 하는 독은 강한 자를 강화시킨다. 이때 강한 자는 이것을 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프레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은 “삶의 가장 낯설고 가장 가혹한 문제들에 직면해서도 삶 자체를,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라" 고 말한다. 삶이 주는 고통, 외로움, 비루함, 허무함 그리고 원망스러운 인간관계마저도.
결국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우리의 성장에 호의적인 전제조건이며,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단계 높이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돌아 돌아 겨우 온 곳이 제자리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해도, 나는 지난 세월을 허송세월 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깊은 절망의 끝에서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치고 있을 때, 괴로우니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을 때, 와르르 무너져버린 자신감에 더 이상 자신이 누군지도 알 수 없던 때. 바로 그 순간 나는 주위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배려의 바다와 만났다. 마치 내가 모르던 세계와 조우한듯한 기분이었다.
인생에 헛된 것은 없다. 모든 게 경험이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나 자신과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가 걸어온 길을 선택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더 편해졌다. 나 라는 아이와 한층 더 격의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기에 이제는 조금 안도할 수 있다. 전과는 다르게 나에게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내가 퍽 믿음직스럽다. 지치고 각박할 때, 마음의 평온과 위안이 절실할 때, 밖의 그 누군가 대신 나 자신을 찾게 되었다.
“인생만큼이나 굉장하지. 우리에게 행복이 뭔지 가르쳐주고.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만이 행복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어. 행복이란 대조의 게임이니까. 감정의 스펙트럼 한가운데로만 헤엄치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본질을 경험할 수 없어. 이게 우물의 교훈이야. 하늘이 광활하다는 걸 이해하려면 때로는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것." <일요일의 카페>
예전에 선생님이 들려주었던 명언이 생각난다. 중요한 건 도착지가 아니라 여정이다 라는 말. 어렸을 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살다보면 좋으면서도 나쁘고, 행복하면서도 슬픈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그냥 느낌대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자신감 넘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내가 낙오자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위기에 처한 인간관계도 있고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비밀도 있다. 이토록 변수 투성이인 우리네 인생에서 어느 시점에 어떤 기분을 느끼고 누구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뭘 하면 좋을지 하는 설계는 쌀 한 톨 만큼의 무게를 가질까 말까 할만큼 무의미하다. 그래서 때로 나는 머나먼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정말 그게 나을지 모른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 -정한아, <달의 바다>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이정하, 바람 속을 걷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