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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 Jul 18. 2022

어떤 일에 대해 쓴다는 것은

머리가 복잡할 때, 마음이 소란할 때, 그럴 때마다 펜을 들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머릿 속의 아우성이 조금은 잠잠해졌을 때, 나는 그럴 때 흰 페이지를 열고 생각에 잠긴다.


어떤 일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끝내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 입은 기억에 묘비명을 세우는 일, 그 무덤에 꽃 한 송이를 놓아주는 일, 그러고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는 일. 나 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고, 그래도 버텨냈다고 위로하는 일, 그러니 나는 아름답다고 위안하는 일, 그러므로 이제 그만 발길을 옮겨 이 모퉁이를 돌아나가자고 격려하는 일.

감정이 예민해 슬픈 영화는 보지 못했던 어렸을 적의 나. 그 말랑한 인간이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숨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잠시동안의 이별이 아쉬워 매일 밤 눈물을 찔끔하며 놀이터를 나서던 아이. 아침에는 아빠가 출근하는 게 아쉽고 슬퍼서 몰래 울곤 하던 초딩. 그 뒤로는 숱하게 마주했던 이사와 전학, 출국과 입국 등으로 현실에 허덕이느라 잠시 닫아놓았다. 생각하면 아프고, 아플 땐 때로는 나 혼자니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세상의 경계가 넓어지면서 굳이 슬픈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헤어진 친구가 보고싶어 슬퍼도 지금 나에겐 그만큼 좋은 다른 친구가 있을테고, 떠나온 곳이 그리워도 지금 내가 있는 곳도 만족스럽다. 굳이 향수에 젖어 회상에 잠기지 않아도 현재를 즐기느라 매일이 바쁘기에 내 심장은 조금 더 편해졌다.


하지만 조금 다른 건 과거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 사진을 보면서 많이 울기도 했었지만 기쁘게 보내주는 일, 행복을 빌어주는 일이 이제 뭔지 알 것 같다. 좋은 만남이 있으면 좋은 헤어짐이 있는 것. 우리가 어느 날 휙 서로의 품에 좋은 인연으로 다가간 것처럼 떠나는 것도 그렇게 기쁘게, 미련없이 휙 보내주줄 수 있는 자세. 아끼는 마음이 거기에서 머물다 천천히 떠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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