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비로소 진짜일까
사람과 함께 할 때 오히려 훨씬 더 외로워지는 경험.
누구나 해봤을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너무나 사랑하고, 나의 시간을 꽉꽉 채워 내가 좋아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들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철칙(나쁘게 말하면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 내 시간이 낭비될 때 심적 고통이 큰 편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나의 우선순위의 1위가 아닌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경우에는 그 순간들 1분 1초가 실시간으로 후회되고, 기회 비용을 수도 없이 곱씹으며 다시는 이런 결정을 하진 말자고 속으로 다짐하며 후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나의 우선 순위는 사람 중심이기도 하지만(불변의 최우선순위는 가족), 가치 중심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점의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 그 리스트에는 일적인 욕심, 내 정신 건강을 사수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종종 불시에 찾아오는 번아웃 치유에 대한 필요성 등이 상위에 자리하고 있고, 리스트의 하단 어딘가에는 좋은 동반자를 만나고픈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내 마음의 여유를 재단한다.
그런 마음은 때때로 아예 싹 사라져서 리스트에서 보이지 않아버리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호기심과 설렘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풍선을 달아 조금씩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며 호시탐탐 수직상승의 기회를 엿본다.
새로운 인연에 대한 욕심이 (그것이 로맨틱한 만남이든 플라토닉한 만남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 중간이든) 크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미 충만한 사랑을 주고 받고 있다고 느껴서인 것 같다. 가정과 사회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고, 또 내 모든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기지만, 그 사이 사이 많은 지인들과 연을 맺고 필요한 교류를 하며 지낸다. 외롭다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일과 취미를 공유하는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고 있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가끔 만남이 뜸해지거나 어려워져도 사람이나 감정적 교류가 그립다는 느낌은 잘 받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로보트인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나와 감정과 생각의 깊이가 맞지 않는, 그냥 쉽게 말해 성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외롭고 텅 빈 느낌을 받는다. 말을 해도 그 사람의 내면에 가서 닿지 않는 느낌,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 그리고 내가 무방비로 노출된 느낌. 불편하고 답답하다. ISFJ인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 불확실하고, 비효율적이며, 무의미한.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여러 사람들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겨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소통이 아니라면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종종 있다.
단적인 예로, 말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나는 말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 상황의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일뿐. 내가 낯선 사람과 있을 때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면, 그것은 아마 그 사람을 다시 볼 생각이 없어서일것이다.
나는 내가 한 마디를 말해도, 별다른 노력없이 나의 행간을 파악할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과 있어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같은 말을 해도 톤과 단어 선택과 어조에 따라 정말 많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데, 나도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그렇게 예민하고 심오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기 때문에 아닌 사람에 대해 적잖은 실망을 하게된다. 예의가 없다거나 무신경하다거나 아니면 무관심하다거나 하는 확대해석을 하게되기도 한다.
오해는 너무나 힘겹고 소모적인 일이기 때문에, 대화에서부터 순조롭지 않은 사람은 아예 호감을 가지고 싶지도 않다. 그런 만남을 숱하게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정 많은 성격이 끌고 갈 미련의 레드카펫이 눈에 선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 행동, 결정 등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30대의 사랑과 우정에서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소중히 대하며 깊고 향기로운 관계로 지속시키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