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Days Dazed

젊고 그렇지 않은

사랑

by 우너


20대 후반, 30대 언저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관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지난 관계나, 주위 사람들이나 부모님의 선례에 대한 고찰이나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자기가 옳다고, 혹은 자신에게 맞다고 확고하게 믿는 신념이 고착되어 있는 거겠지.


나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20대에는 확고한 결혼관과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들을 그물처럼 촘촘히 짜놓고 내가 몇 년 후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알고 있길 원했다.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제 때에 기회를 잡고 뒤쳐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물 흐르는 대로 살며 몸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겪고 그들과 함께 또는 그들과 반하는 경험들을 했다. 시간은 나이가 들자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매 년 새로운 일들을 하며 시시각각으로 나는 탈바꿈했다. 덩달아 주변인들에 대한 시각이나 나의 미래, 나의 가족,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나 대하는 태도도 변해갔다. 그러자 나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언하는 것을 멀리하게 되었고, 말도 생각도 열린 채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세상에는 결말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는 일들과 상황들이 비재하다. 내가 섣불리 매듭지어 결론을 말하기에는. 내 미래도 마찬가지로 속박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이제 옳고 그른것,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바라고 바라지 않는 것들을 확실히 알고 있는 대신, 나머지 범주 안에서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나에게 허용한 사상적 개념적 자유가 나를 한 꺼풀 여유롭고 너그럽게 만들어주었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찾아오는 가장 아름다운 행운은,
탐구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고
탐구할 수 없는 것을 조용히 숭배하는 일이다.
괴테 <격언과 반성>



20대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도 사랑일거라 믿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별을 모르면서도 이별을 말한다. 그 사람을 알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믿고 뛰어들고, 그 환영에 목숨까지도 걸 수 있다 믿는다. 분명히 쉽게 하는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 인연을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분명 멀고 험했을테니. 자신의 이상을 좇아 어지간히도 까다로운 선별 과정과 많은 시행착오를 넘어야 했을테니까. 어리고 젊은 사랑은 불같이 뜨겁지만 무모하고 극단적이며 자아도취적인 요소가 많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미명 하의 나르시시즘에 취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꿈같은 섬에 함께 갇힐 사람을 원하고, 현실과 사랑은 공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진다기보다는 취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20대의 내가 사랑을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랑이 서서히 식기보다는 순식간에 증오와 환멸, 질투로 변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누군가를 20대의 마음가짐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던 지도 모른다. 나는 늘 상대가 내 현실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했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랐다.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내 감정은 눈이 내리듯 소복소복 깊어졌고 마음이 식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계가 끝나더라도 마음이 떠나지 않았기에 내 20대의 이별은 아팠다. 밀어내는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떠나는 멍청이는 없었다.


나는 질투를 이해하지 못했다. 믿음은 질투를 상쇄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감정이 부족한거라고 누군가는 말하기도 했지만, 과연 그럴걸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많이 사랑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집착과 소유욕으로 귀결되는 걸까? 나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거라 생각했다. 진실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에는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의 노예가 될 이유도 동기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상대가 내 믿음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믿어줌으로 인해 그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순식간에 둔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 믿음 속의 그와 현실의 그 사이에는 피치못할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이 작고 점점 좁혀질 수록 내 마음이 다칠 위험이 줄어들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좋은 사람이길, 그리고 더 바보같게는, 그저 (내가 우리 관계의 민낯을 알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아야 할)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라며 마음을 다해 그저 아직 무탈히 지나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누리는 것.


미묘한 기운이 서린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나에게 매번 말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자고. 그게 안되면,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을 만나자고. 이해라도— 피치 못하다면 단념이라도— 쉬울 수 있게. 확신하는 것은,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면 믿어버린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고 조금은 불안하지만, 겁은 나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후회와 미련보다는 상처가 더 나은 교훈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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