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라는 주홍글씨
그 일이 터졌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왜 하필 너냐며, 차라리 니가 가해자가 되지 왜 바보같이 당하냐며.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심은 아니었을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내가 피해자여서, 내가 맞고 내가 당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고통과 트라우마로 점철시켜 마비시키는 불행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는 살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죄책감에 나는 내 스스로를 단죄하고 마음을 불구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한 인격체에게 저질렀을 무지막지한 범죄의 크기와 심각성도 모른채 자아실현을 명목아래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갔다면, 스스로가 얼마나 혐오스럽고 불쾌할까요. 그렇게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삶이란 얼마나 괴로운 것일까요?
내가 당해서 다행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당한 일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부끄러웠고, 나의 유한 성격과 순진함이 나약하고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나에게만 일어난 일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부주의해서, 밉상이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크나큰 실수를 했음이 틀림없거나, 그냥 좋아하거나 용서하기 힘든 존재여서, 믿음을 주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혹여 나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운이 나빴거나, 누구의 눈에 잘 못 띄어서 그랬을거라 여기고 나의 경솔한 언행을 꾸짖고 채찍질했습니다. 더 신중했어야지. 아무에게나 아무 말이나 하지 말았어야지. 마음을 열지 말았어야지. 어른들의 조언은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뭐든 네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나의 다친 마음은 돌보지 못했습니다.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 몇 백명의 학생 중 내가 표적이 되었으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거란 가족의 시선이 곧 세상의 시선처럼 느껴졌고. 가만히 있어도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고 있다는 느낌이 시시각각 나를 짓눌렀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상상의 그 아픈 시선이 궁극에는 나의 시선이 되어버렸고, 나 자신조차 견딜 수 없는 나의 어떤 모남이 사회 부적응자로 나 스스로를 낙인찍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잔인하게 군 것. 그게 세상 모두의 시선과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맘이 편했던 나. 세상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는 미명 하에 순수했던 나를 지키지 못했던 나. 그랬던 내가 미안합니다. 세상에 혼자 남은 나에게 내 편 들어주지 못해서. 14살의 나에게 더없이 미안합니다. 작고 밝고 그저 사람이 좋았던 그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세상의 밝은 곳으로 데려다 주었어야 했는데.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사랑받을 수 있었는데. 더 강하고 더 지혜롭지 못해 미안해. 몸은 지키지 못했더라도 마음은 지켜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그 후에 많은 세월동안을 보내면서도 나는, 성인이 되고, 20대를 보내고 서른이 될 때까지도,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의 발단이 될 만하거나, 그들의 잘못된 결론을 부추겼을 원인들을 나에게서 찾고, 무던히도 그 허물에서 빠져나와 탈바꿈하기위해 노력했습니다.
피해자였지만 그 타이틀이 부끄러워 아주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나의 가장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는 했습니다. 가볍게도, 무겁게도 받아들여졌습니다. 동정의 눈빛도, 공감의 눈물도 원치 않았지만 나를 깊게 열어 내보이기 위해선 싫어도 꼭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너무도 뿌리깊게 자리한 사건이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하는 건 매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 살아내야 하는 기분이었기에...
그래도 나는 내가 당해서 다행입니다.
나는 조금이나마 고통받는 약자의 눈빛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불의와 폭력 앞에서 나의 일처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모순과 위선으로 빚어진 세상의 역경과 고통의 모서리들과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를 용기와 힘이 불끈 샘솟고는 합니다 .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동정심과 연민으로 약자와 아픔과 슬픔을 나눌 줄 아는 나로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아픔은 제각각이 아니라 이어져있는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답이 아니며, 어떠한 핑계로도, 상황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또 그 철칙 앞에 우리 모두가 평등함을 굳게 믿습니다.
더불어 나의 고통에 당황하고 어쩔줄 몰라 쩔쩔매기만 하던, 그러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던 어른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볼품없었는지.. 그들의 태연한 표정, 태만한 태도와 말투 하나 하나 기억합니다.
권력과 힘과, 나의 작은 세상에서 일어나던 부조리를 뿌리뽑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호한 조치도, 결단력도, 용기도 없던 무능하고 무기력했던 그들.
자신이 가진 무엇 하나 잃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치라는 선택에 머무르던 한마음의 어른들.
누구에게 나쁜 소리라도 들을까 세상의 정의에 등 돌리고 어렵게 낸 작고 힘없는 목소리마저 묵살하던 그들.
미안하단 말조차 자신에게 피해가 될까 말을 사리던 그들.
아직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그들.
그래서 나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어떤 작은 생명에게도 그런 무력한 존재는 되지 말자고 다시금 마음깊게 되새깁니다. 결과를 바꿀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돕는다면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어요. 손을 잡아준다면, 혼자가 아니라면, 더 힘 낼 수 있어요.
사과를 받지 않아 용서도 할 수 없었던 나날들.
하지만 사과 없이도 용서할수 있었습니다. 그게 나를 위하는 길이었다는 걸 깨닫고, 내가 아픔을 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 참으로 많은 크고 작은 행복들이 선물처럼 나를 찾아와 어둠을 덮어주었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두려워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낯선 사람들이 겁이 났던 어린 나도 아직 내 안에 있지만, 그 아이를 달래고 어를 수 있는 더 크고 성숙한 나도 있어서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픔은 극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듯이 감쪽같이 치유되는 것도 아닙니다. 끌어안고 이해하고, 나이테처럼 내 안에 두르고 평생 살아내는 게 아닐까요? 부끄러워 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나는 아픔을 이겨내고 이렇게나 행복해진 사람이니까요. 예술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타투처럼, 성스러운 용맹의 징표인 전쟁터 영광의 상처처럼. 그렇게 어루만지며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 상처를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왜곡도 하지 않겠다고 매번 다짐합니다. 내가 겪은 일은 뉴스에 나올 법한 끔찍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큰 충격이고 치부가 되어 많은 세월 어둠 속에 울게 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지금, 그들은 날 생각하고 과연 미안해할까, 아직도 당당할까, 아니면 잃을게 많아져 두려워하고 있을까. 더 최악인 시나리오라면.. 기억조차 못할까? 어느쪽이든 알 바 아닙니다 이젠. 내가 분노하고 단죄해야 할 세상의 부조리는 수두룩하고, 나에게 열매맺은 폭력의 씨앗은 내가 다시 품어 꽃으로 피웠으니까. 그들이 같은 범죄를 계속 행하지만을 않았기를 바랄뿐입니다.
여행가방 속에서 숨죽여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난 아이. 더 많은 학대받는 아동들.
폭력과 학대, 방치 속에 고통뿐인 세상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유기견들.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둠 속에서 자책하고 있을 학교폭력의 피해자들.
모두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을 생명들입니다.
작은 마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보여주세요. 힘이 될거에요.
#함께해요 #도움의손길 #학교폭력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