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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 Sep 16. 2022

관계와 사람

依然, 굳게 홀로 서기



어린 날 그 언젠가 만났던 것 같은 푸르름이다. 매일 그저 주어진 날들도 퍽 좋았었다. 꽤나 포근했고 나름 아늑했다. 그건 마치 무성히 우거진 고목 아래에서 쉬는 것과 같이 근심 한 점 없는 태평함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끝을 알 수 없이 무한히 펼쳐질 것만 같은 무궁무진한 모험의 세계나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과는 정반대의.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본능적으로 바다에 이끌린다. 따뜻한 푸름의 나무는 나에게 편안한 쉼을 주고, 차가운 푸름의 바다는 설렘과 흥분을 준다. 나무 아래서 나는 걷거나 눕고 싶고, 바다의 나는 자꾸만 더 깊고 먼 곳으로 뛰어들고 싶어한다. 나무는 늘 곁에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곁을 내어주지만, 내가 간절히 갈망하는 곳은 바다이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아가는 곳도 바다이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어떤 곳에서 평생 시간을 보낼 것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큰 나무 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부르면 나타나고, 올라타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 모르는 마법의 양탄자 같은 것. 모험은 짜릿하지만 그 끝은 허무할 때가 많다. 나의 평정을 되찾는 일상으로 회귀하는 발걸음은 그리 신나지만은 않다. 나의 일상에, 나의 평화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데려다 놓는 것이 그럴 때 필요한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평상시의 당연한 일상에 한층 더 사랑스러운 리듬이 입혀질텐데.




불가에서는 쾌락을 경계하고 고통을 초대해 감내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작은 쾌락은 더 큰 쾌락을 욕망하게 하고, 욕망은 중독성이 강해 곧 지나친 감정과 집착의 소용돌이에 매몰되어 버릴거라는 우려에서일 것이다.


좋은 감정도 마찬가지다.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을  없으므로, 기쁨, 즐거움, 환희 등의 감정 이후 찾아오는 나쁜 감정은 상대적으로  견디기 힘들고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나날들에서 중립적인 상태로 돌아갈 때는 기분이 쳐지고, 우울감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가장 안정적이고 건강한 때는 평온하고 아무  없는 잔잔한 날들이지 않은가?  이상 새롭고 설레는 일들이 생겨나지 않더라도 편안하고 포근한 나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순간의 쾌감 따위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감정의 롤러코스터휘말릴 염려없는 무료한 일상에 오히려 감사하며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비워내는 일은 어렵다. 부유하는 생각을 정리하는 건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러한 행위를 정신 집중에 비유한다. 그 어려운 이유는 마음이 이상(理想)을 끊임없이 물색하고는 끝내 포획하는 데 있다.


마음은 내일의 이상을 마음에 그리기도 하고, 오늘을 이상으로 채우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은 생각하지 않으면 감각이 주는 쾌락을 선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감각적 쾌락이 이상을 구현한다. 마음의 사고, 상상은 감정의 노예가 되어 움직인다.


선택의 순간, 나는 평정심에 방해되는 일들을 외면한다. 차분한 성향의 나는 때로 나의 에너지를 소진해버리고 힘들어져버리는 날들이 두려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나 사람관계는 회피하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려 한다. 평상 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상가능한 일들로 계획적인 하루를 채우고, 잔잔하고 호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편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붓다가 가르친 여덟 가지 '바름' 에 관한 계율 중 바른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반대편으로 움직여 가지 마라. 중간에 머물라.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 안정을 찾아라.


마음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 거의 불가능한 일은 중간에 머무는 일이다. 균형을 이루는 일. 언제나 하나의 극단에서 반대편 극단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 마음의 본성이기 때문에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움직여 가기는 쉽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불균형에 의존한다. 마음은 변증법적이다. 그래서 중간에 머무는 것은 어렵다.


좋은 감정도 멀리하고 경계하는 것, 적당히 누리는 편을 선택하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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