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선물

by 우너

나는 내가 잘못한 딱 그만큼의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그것을 과장하고 부풀려서 지나친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성향이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내 발전에 불필요하다는 건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의 중압감을 스스로 버티지 못해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뒤 돌아온 하나같은 지적에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나의 직책과 업무의 연장선상에 잘도 붙여 놓은 다음,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전가시키고 채찍질하며 괴로워했다.


그게 앞으로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는 둘째로, 내가 내 책임감에 합당함을 부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적인 감정때문이었다. 내 실수(인지 아닌지 모를)로 인해 누군가(내가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극대화)가 상처받고 고통받는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깊이 공감하며, '너는 왜 이 상황을 더 잘 해결하지 못했니?' 하는 자책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내가 달리 행동했었더라면..' 하는 후회도 당연히 뒤따랐다. 내가 남겨놓은 이런 후회와 미련의 실마리들은 꿈에까지 날 좇아와서 괴롭히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그건 감정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감정을 전달했을 때 그 사람이 느껴야 할 감정은 물론 그 후의 일들까지 전부 예측하고 상상하며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야 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쉽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도 어쩌면 그 영향이 클 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감정표현의 대가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큰 것이라 느껴졌다. 특히 사회 생활에 뛰어들고, 모든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혀 이어져 있는 관계의 정글에서 나의 감정에서 기인한 행동들이 미칠 파급효과가 두렵기만 했다. 자연스레 필요한 시기에 올바르게 전달하는 방법을 깨치지 못했으니, 억눌려서 꼬일대로 꼬인 감정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잘못된 타이밍에 전달되곤 했다.


과장된 책임감.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내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그 사람이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능력껏 잘 해결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그 사람 곁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려 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 자체를 없애주기 위하여 애쓴다. 나의 그러한 태도가 사람들에게는 ‘내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고민해주네?'로 느껴져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지만, 이것도 내 강박 중에 하나라는 점에서는 그리 건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단 저런 게 반복되다 보면 내가 지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가깝게 지내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말한다. 고난 그 자체가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고난과 더불어 사는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해왔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신경쓰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그들이 고난에 고통 받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워서, 고난 자체를 없애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고난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고난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고난과 더불어 사는 것의 고단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들을 믿고 지지하는 주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해 주는 것 말이다.


일례로,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간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실상 그건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스트레스이며 발달 과정 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인데, 오히려 엄마들이 그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에 불안하더라도 아이들을 좀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 이럴 때 쓰는 단어가 '믿음'이구나.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먼저 팔 걷고 나서기 전에 그냥 좀 기다려주는 것,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 나갈 시간을 주며 가만히 옆을 지켜주는 것. 그런 게 믿음이구나. 내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불신과 불안을 눌러가며 상대방에게 시간을 주고 지지를 보내는 게 믿음이구나. 그거야말로 관계에서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겠구나.




내 마음에도 과장된 책임감 대신, 소박한 믿음이 싹을 틔웠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5.09.20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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