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들의 종말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세에 대하여

by 우너

I am mourning the death of something beautiful


말을 예쁘게 쓰는 사람이 좋아. 같이 있는 나도 물들어가는 느낌이야. 그런 습관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잖아.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접한 수많은 단어들 중 좋은 것을 골라서 좋은 마음을 담아 사람들에게 자주 말해주었을 거고, 그런 말 하나하나가 습관이 되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든 것 같아서 더 좋아. 예쁜 말을 주는 사람은 따뜻해.





붙잡아 달라는 말도 할 수 있었고, 나 없이 행복하지 말라는 말도 꺼낼 수 있었다. 다시 해보자고, 나 지금 너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차분함을 선택했다. 서로에게 남길 마지막 문장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고 결국 가장 덜 상처가 남는 말을 골랐다.


입 안에 차오르던 수많은 문장을 삼키는 일이 쉬웠던 건 아니다. 그래도 꺼내지 않았다. 내 감정이 상대의 하루를 더 무겁게 만들까 봐, 미련이 또 다른 짐이 될까 봐, 그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더 솔직했더라면, 손을 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수십번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코 비겁한 회피가 아니었다. 성급한 포기도 아니었다.



어른의 이별은 덜 아픈 이별이 아니다. 다만 아픔을 던지지 않고 가져가는 이별이다. 상대를 흔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꺼내본 말들 저편에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마음속에 남아 오래 머문다. 그것들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나를 아프게 한대도 사랑이 깊었다는 증거이기도, 한 때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아꼈다는 증거이기도, 나에게도 피끓는 열정과 순수한 애정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므로 견디기로 한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날의 선택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는지. 다만 다시 돌아가도 다를 건 없다 말할 수 있으면 됐다. 후회없다고, 실수가 아니었다고, 우리의 마음과 미래가 달린 일을 결코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는 않았다고.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책임지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하는 마지막 사랑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