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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보 Apr 06. 2022

“문치교화”에서 “문명자화”로

“알고리듬 시대, 문화예술정책 전환의 필요성” 중에서

“알고리듬 시대, 문화예술정책 전환의 필요성”(경기문화재단 GGCF 정책라운드테이블, , 2021.11.3., 경기상상캠프) 중 일부


 

새로운 접근법과 실천과제 제안 – 문치교화에서 문명자화로 전환


끝으로 위와 같은 고찰들을 근거로, 공공부문이 인공지능 시대의 문화정책 의제를 설정하는데 고려해야할 새로운 접근법과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정책이 관여할 문화의 영역을 새롭게 정의하는 접근법의 전환입니다. 문화에 대한 정의가 어렵다고 하면서, 오히려 수없이 많은 학자들의 정의가 존재합니다. 법으로 문화를 정의하는 것은 정책이 개입할 영역을 설정하고, 국가가 지향할 가치를 명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책의 전환을 위해서는 동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통찰하는, 즉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담론 과정을 통해 문화의 개념이 재정립 되어야 합니다. 새로 정립되는 문화의 개념 위에서 문화정책이 관여할 영역과 관여하지 않을 영역을 다시 정해야 합니다. 저는 문화가 시간과 공간에 남겨진 문화 주체들의 삶의 흔적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문화 주체의 삶은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정책적 개입을 위한 문화를 정의할 때 기술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른 문화주체들과 문화의 시공간의 확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최근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디지털알고리듬 문명의 시대에 문화의 시간/공간 그리고 문화의 주체까지도 확장된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기술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른 문화의 시공간-주체의 확장>



이런 접근법 위에서 제안되는 실천과제는 “①가치 주장이 아닌 시대변화에 대한 통찰에 기반 하여 문화정책의 철학 세우기”입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 특히 코로나 이후의 문화정책이 어떤 가치를 지향할지, 시대에 대한 통찰에 기반해서 합의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코로나 이후의 회복을 위한 문화정책과 기계문명 시대의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정책 철학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실천과제는 “②Culture as Algorithm 시대에 맞게 문화관련 법제 정비”입니다.  앞서 Culture as Algorithm 현상과 관련된 법/제도적 대응 현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만, Culture for the Algorithm에 대한 과세 도입, AI 저작권법 정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AI의 편향성 규제 거버넌스에 참여 문화정책 영역이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AI 감사(AI audit)”에 준해서 소위 AI에 대한 문화영향평가의 법제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두 번째 접근법의 전환 제안은 '문화:文化'의 개념을 시대적 맥락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文化의 개념으로 개화기 동아시아가 유럽의 culture라는 개념을 수입, 번역하는 과정에서 “文治敎化”(무력이 아닌 문으로 다스리기 위해 국민을 계몽, 교화하는 것)라는 개념을 대응시킨 것을 사용해왔습니다. 1870년대 메이지유신 시대 일본의 학자들은 영어 Culture를 수입하여 事物로도 번역해보고 修鍊으로도 번역해봤답니다. 특히 1920년대 세계대전의 참상을 보며, 그리고 서양에서의 물질문명에 대한 반감에 편성하여 문화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문명과 문화를 매우 다른 말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주 1). 이제 문치교화는 국민의 문화적 주체성을 중시하는 문화민주주의의 시대에 적절하지 않은 개념입니다.               


문화의 개념은 국가-인간-기계문명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문화의 의미가 변화하고 선택되는 것입니다. 각 주체들은 문화로 추구하는 실제 욕망을 “좋은 문화”, “다양성”, “동시대 트렌드”라는 명분 뒤에 숨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의 주체성을 위협할 수준으로 발달된 “문화 기계”가 제공하는 “유행”을 구매한 “나의 문화 : My Culture”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입니다. 반면 국가가 제공하고 국민으로서 따라야 할 “좋은 문화 : The Good Culture”의 압박도 여전합니다. 이들 사이에서 인간 개인들의 문화적 힘을 키워, 국가-개인-기계라는 문화주체들이 각각 추구하는 문화 개념들 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 문화주체가 국가의 문화(질서)나 기계문명의 문화(욕망)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문화의 개념 전체가 무너지고, 인간 문화의 힘이 없으면 위의 두 문화에 의해 억눌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세상의 균형을 추구할 때, 물질과 정신, 인간과 비인간, 심지어 실재와 가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철학적 유산들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동아시아에는 문치교화의 유가적 전통뿐만 아니라 物化나 自化, 自然 같은 도가적 전통도 있었습니다. 후자가 지금 디지털알고리듬 문명 시대에 더 적절해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문치교화” 대신, 국민이 아니라 ”문명을 문화답게 밝혀 시민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는”, 소위 “문명자화(文明自化)”를 이 시대에 맞는 문화의 개념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접근법의 전환은 너무 추상적이고 와 닿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관점의 변화가 문화사업의 지향점, 성과지표까지도 바꾸어 놓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접근법의 변화에 따라 제안되는 실천과제로 “③건전한 공동체 만들기 문화정책과 개인의 문화역량 키우기 예술정책 간 균형잡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역문화> 시책과 구별되는 <예술교육>을 통해 시민의 문화적 주체성과 소통역량 강화하는 것입니다. John Maeda라는 디자이너가 “Design is a solution to a problem. Art is a question to a problem.”라고 말했답니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문화복지, 지역문화균형발전 등 문제해결을 위한, 국가의 “Design Thinking”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이제는 기계문명시대에 인간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 개인의 “Art Thinking”을 지원하는 예술정책이 중요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었다고 이야기 할 때, 이미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 있지 않으면 주체성을 잃고 따라가는 사람이 됩니다. 문화는 사회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문화정책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야 한다면서, 기존의 문화정책 영역 안에서만 사고하는 것으로 시대에 맞는 정책 전환은 어려울 것입니다. 전환을 위해서는 서 있는 자리와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각주, 참고문헌>

주1. “동서 ‘문화⋅문명’의 개념과 그 전개—현대 문명 담론의 개념적 이해를 중심으로” (전홍석, 2010, 동양철학연구 제63집), “계몽기 문화 개념의 운동성과 사회이론” (김현주, 2015, 개념과 소통 제 15호) 등 개화기와 1920년대 문화, 문명의 번역과정에 대한 연구 논문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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