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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보 Apr 07. 2022

이유와 의미, 이미지와 이야기

뜨는 지역, 뜨는 문화콘텐츠 – 지역문화콘텐츠의 다양한 사례와 쟁점들

(한국콘텐츠진흥원 “K-Contents” 2016.7-8Vol 2 Focus In 수록 글 원문)


지역+문화? 콘텐츠!     


지역문화콘텐츠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 논할 때, 지역성을 잘 표현한 콘텐츠의 성공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관광 등을 통한 지역의 명소화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이런 혼란은 산업, 경제적 관점의 문화콘텐츠 정책 주체와 지역문화의 본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예술정책 주체가 관성적으로 쳐 놓은 서로의 칸막이 안에서 사고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 결론으로 벌어질 일이 누구의 업무가 될지 지레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피느라 마음이 불편할 것일 뿐, 실제로는 참으로 당연하고 편리하게 연결된 주제인 것이다.      

미디어 세상 속의 가상의 콘텐츠들과, 그 본성이 원래 현실세계와 인식세계를 이어주는 것인, ‘지도’를 매개로 찾아가는 실제 현실 영토가 서로 융합된, 소위 증강현실(AR)이 포켓몬고의 열풍을 만들어 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역의 활성화와 지역콘텐츠의 흥행은 서로를 증강시켜주는 관계로 보아야 한다. 그 매개 고리는 문화이다. 지역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영토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콘텐츠의 원천 자원인 문화의 서식지이면서, 동시에 그 콘텐츠가 증강현실로 구현될 미디어 장인 것이다. 거기서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콘텐츠가 인기리에 구현되면 지역은 활력을 갖고, 명소가 된다.    

       

이유와 의미, 이야기와 이미지...가상과 현실 세계에서 찾아 헤매는

     

지역이라는 물리적 조건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화는 빠르게 콘텐츠로 바뀌어 비물리적인 미디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구글어스를 비롯한 지도 및 이미지 서비스는 지구 전체의 풍경을 인터넷 속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활자매체에 담긴 지식과 매일 일어나는 인간세상의 사건들은 포털사이트콘텐츠로 서비스될 뿐만 아니라, 인간들끼리 시시각각 주고받으며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들도 SNS 서버에 저장된다. 하지만 영화 ‘Her’에서 목소리만 나오는 주인공인 인공지능체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적능력과 심지어 감성까지 빠르게 습득해가면서도, 결정적으로 육체를 가진 인간을 부러워한다. 앞으로 인간이 기계에 대해 가지는 유일한 경쟁 우위의 영역은, 물리적으로는 신체에 깃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비-물리적으로는 일하지 않고 놀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생계가 아닌 재미를 찾아 자기가 속한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을 찾아간다는 것이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남보다 더 나은 놀 거리를 찾는 인간들은 특히 ‘이유와 의미’ 찾아 떠나려고 한다. 이때 실제 육체를 움직이는 무대가 되는 ‘지역’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감흥을 주는 특별한 요소이다. 그렇게 실제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 여행의 ‘이유와 의미’가 되어 줄, 그 지역의 ‘이야기와 이미지’, 즉 ‘문화 요소들’은 곧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      

이유는 개인의 취향에서 기인하고 의미는 공유되는 감동으로 귀결된다. ‘이야기는 지역을 찾아갈 호기심을 부르고 이미지는 내 경험의 징표로 널리 퍼뜨려진다. 이 네 가지 모두 개인적으로 직접 체험해야 내 것이 되지만, 미디어,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서 나에게 들어왔다가 내 안에서 가공되어, 다시 나와 연결된 대중에게 전파됨으로서 그 가치가 배가된다. 문화 또는 문화원형과 문화콘텐츠가 어디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두는지와 정책적 관점, 접근 방법에 따라 개념 설정에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문화’로 재해석될 수도 있는 문화콘텐츠는, 디지털-문화자본주의 시대에 개인화된 문화적 경험을 대중적인 경험으로 치환해주거나 반대의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디어를 통한 문화소통 단위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나 대부분의 활동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지금, 문화콘텐츠 자체가 곧 문화이며, 문화가 삶의 전체를 반영한다면, 특히 지역문화콘텐츠는 세상살이 모두를 매체로 옮겨 놓은 문화소통의 단위인 것이다. 그래서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것 어떤 것이라도 지역문화콘텐츠가 될 수 없는 것이 없다. 오프라인의 지역이 곧 온라인의 지역이고, 온라인에서 뜨는 지역이 오프라인에서 뜬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뜨는 지역...우연 또는 필연  

   

지난 7월 영국 BBC에서는 영국 북옥스포드의 평범한 시골마을 키들링턴(Kidlington)에 갑자기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데 사연을 소개했다. 매주 목요일만 되면 갑자기 중국인 관광객 수백명이 버스를 타고 나타나 쓰레기통 앞에서 사진을 찍고 사라진다. 1만4000명 정도가 사는 평범한 시골마을에, 그것도 왜 주로 쓰레기통 앞에서 사진을 찍는지 도대체 그 영문을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잘못된 관광가이드의 정보 탓일 것이라 추측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언제부터인가 중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어버린 이화여대 정문을 찾는 이유가, 이화(梨花)의 중국어 발음 ‘리화’가 돈이 불어난다는 뜻의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또한 누군가가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지역콘텐츠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동선과 지역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그 여행가이드의 소위 ‘스토리텔링’의 힘(그것이 의도했든 않았든, 얄팍한 상술이든 아니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뉴시스, 2016.7.8.>

  

반면 어느 날 갑자기 포켓몬고의 성지가 되어버린 속초는 심지어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아무런 노력 없이도 올해 이 지역의 관광수익을 책임질 킬러 지역콘텐츠를 얻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정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은 2014년 3월부터 약 두 달간 경남 진주시를 전 세계 운석 헌터들의 성지로 만들었지만, 반짝 소동에 그치고 말았던 적이 있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 ‘자기야-백년손님’ 때문에 졸지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경북 울진군 후포리는 요즘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었는데, 또 갑작스런 메인 캐릭터 할머니의 별세는 이후 어떤 영향을 줄지 두고 볼 일이다.  

  

<어느날 갑자기 포켓몬고 성지가 되어 버린 속초>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였던 경북 봉화군에는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노부부의 집을 기어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TV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들이 일본, 대만 등 관광객들이 한때 성지를 순례하듯 찾았지만, 남이섬만큼 지속적으로 인기를 받고 있는 곳은 없다. 다른 유명 영화 로케이션 지역들이 한때 반짝하다가 시들해지는 것과 달리 남이섬은 그 자체로 새로운 관광과 문화콘텐츠의 성지가 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지역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정책적으로, 기획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반짝하고 사라지는 인기와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지속되는 사례의 차이는 무엇일까?    

<워낭소리로 유명해지자 봉화군에서 만든 조형물>

       

이야기가 이미지를 만날 때...자석(magnet)처럼  

 

지역의 독특한 자연풍광 이미지 자체가 그 지역을 유명한 명소로 만들어 주고, 그 이미지를 매체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콘텐츠가 되는 경우도 많다. 히말라야 고원,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 아마존의 원시림은 그 풍경을 찍은 사진만으로도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독특한 자연 풍광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천연기념물로 보호받지만, 그 자체를 지역의 문화콘텐츠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아마존 숲 속에서의 원시부족의 삶이나 터키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풍경 안에 숨어 살던 기독교인들의 이야기가 얽힌 화보는 지역문화콘텐츠로서 의미를 가진다.      

자연풍광 그대로라도 그것을 기록하는 인간의 노력 자체가 ‘지역을 기록하는 문화콘텐츠’로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그 콘텐츠가 이후 문화적 창작활동의 자원으로 활용되어 지역을 알리게 된다면 지역문화콘텐츠로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레위니옹의 자연풍광 영상이나 최근 우리나라 영화, 뮤직비디오, 게임의 배경으로 활용되는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촬영 3D 영상은 그런 의미에서 지역문화콘텐츠로 볼 수 있다. 앞으로 3D 가상현실 체험이 일상화되면 그 배경이 될 지역의 독특한 풍광을 담아내는 것은 중요한 지역문화콘텐츠가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깃들어 살면서 만든 문화적 이미지, 특히 거기에 인간의 이야기가 가미된 콘텐츠가 이 글에서 주로 고려하는 지역문화콘텐츠일 것이다. 일단 부작용이나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뒤로 미루더라도, 인간이 자연에 깃들어 살면서 만드는 풍경을 지역문화콘텐츠로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바꾸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철쭉 축제(지리산, 소백산, 황매산...), 산수유 축제(의성, 구례, 이천, 양평...) 등 자연적으로 또는 최소한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진 풍광을 활용하는 것은 고전적인 축제 테마이고, 이를 모방하여 아예 관광농업을 지향하는 유채 축제(제주, 창녕, 삼척, 내포, 부산..), 보리밭 축제(고창, 김제) 등이 벌어지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논의 풍경을 활용했던 김제 지평선 축제가 이모작 농업처럼 보리밭축제로 진화한 것은, 분명 지역의 이미지를 지역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전략적인 접근인 것이다.

    

도시로 오면 자연풍광이 아닌 인간이 만든 풍광도 중요한 지역문화콘텐츠가 된다. 예전에는 시골사람들에게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 자체가 낯설고, 때로는 매력적인 문화적 체험의 콘텐츠였다. 도시의 문화적 이미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거대하거나, 오래되었거나, 널리 알려진 랜드마크이다. 다시 말해 랜드마크가 꼭 크거나 오래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서울 동대문의 DDP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 서울의 중요한 랜드마크이다. 반면, 지역문화콘텐츠로서의 DDP의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아직까지 DDP는 거대한 건축물 이미지 콘텐츠 외에 별다른 문화콘텐츠로서 활용되고 있지는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역문화콘텐츠 활성화 입장에서만 본다면, 거대 인프라를 짓는 것은 별로 수지맞는 접근이 아닐 수 있다.  

   

이미지는 분명 매우 강력한 문화콘텐츠 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널리 확산되는데 한계가 있다. 호미곶의 손 동상은 그나마 이 지역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문화콘텐츠이지만, 매년 한번 연초 해돋이 사진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은 이미지 중심의 문화콘텐츠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미지가 이야기를 끌어 모으는 자석과 같은 구심점(magnet)이 되어 그에 얽힌 이야기와 이미지가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다. 랜드마크란 지도의 축적을 키워도 마지막까지 남는 표기인 것처럼, 인터넷에서 해당 지역을 대표하여 검색되는 키워드가 바로 지역문화콘텐츠의 랜드마크인 것이다. 강한 이미지는 강한 키워드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그 키워드로 찾은 이미지나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확산력이 생기는데, 그나마 고정된 한가지의 이미지에 다양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생성되는 방법은 바로 그 이미지를 찾는 사람들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화마을 벽화 자체를 찍은 사진이나 감천마을 전체 풍광을 찍은 사진은 누가 찍으나 다 똑같다. 하지만 천사 날개에 들어선 사람이나, 어린왕자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 자신일 때 사람들은 색다르고, 가장 중요한 문화콘텐츠로 느끼고, 그 이미지 포인트를 키워드로 해서 인터넷 세상으로 널리 퍼 나른다.   

<호미곶 일출> (사진출처 : 호미곶마을 홈페이지)

  

이야기... 찾고, 만들고, 다듬고, 연출되어야 

    

앞서 소개했듯이 가장 손 쉽게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다.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 인 서울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서울의 이야기를 모아서 역사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이다. 삼풍백화점이라는 특별한 계기와 연관된 기억들은 모아서 책으로 발간되었고, 서울살이와 관련된 다양한 기억들은 온라인 아카이브로 콘텐츠화 되었다. 사람들이 특정 지역을 찾아올 이유가 될 이야기를 제공하는 방법으로서 또 한가지 가장 손 쉬운 것은 역사 속에서 발굴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둘러볼 뿐만 아니라 공연, 해설까지 가미한 ‘대구 야행, 근대路의 밤’은 단순히 이야기를 발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보다 잘 체험될 수 있는 콘텐츠로 가공한 사례이다.      


또 한 가지 손쉬운 (물론 그래서 소유권 논쟁도 뒤따르는) 이야기 만들기 방법은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자 저택이 있는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도시 멤피스는 단순히 엘비스의 저택만을 문화콘텐츠로 활용하지 않고, 그의 기일인 8월 16일을 전후해서 엘비스 위크라는 축제를 연다. 콘서트 외에도 그의 친구, 보디가드 등이 초청되어 숨은 이야기 까지 나누며, 종교에 가까운 숭배의 시간을 보내며, 지역문화콘텐츠로서의 생명력을 배가시켜나간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우상이 왜 없겠는가? 나중에 그들이 묻힐 묘자 리라도 미리 유치해놓고, 지금부터 그 지역과 인연을 쌓는다면, 그야말로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칭송받을 지역문화콘텐츠를 물려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이야기의 구심점이 될 실제 인물의 생가도 서로 자기 지역이 진짜라고 우기며 싸우는 경우도 있고, 홍길동(장성군과 강릉시), 콩쥐팥쥐(완주군과 김제시)와 같은 가상의 캐릭터의 본거지를 놓고도 지자체끼리 분쟁이 벌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지역문화콘텐츠의 가치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만으로는 흩어지기 쉬운 측면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이미지와 이야기를 잘 엮어서 하나의 감동적인 체험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단연 중국의 영화감독 장예모의 인상(印象/impression) 시리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상 시리즈는 장예모 감독과 중국정부의 공동 작업으로 <인상 유삼저>를 시작으로 <서호>, <대홍포>, <여강>, <해남도> 등 명산과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를 지역 주민들이 출연하는 거대한 야외 공연으로 연출해내는 작품이다. 지역문화콘텐츠 활성화를 지향하는 정책이 문화산업적 관점과 역량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사례이다.

<계림 산수실경 공연 인상 유삼저(印象劉三姐)> (사진출처 : https://www.kkday.com/ko/product/30990)

              

공유되는 이유와 의미... 잘 기획된 것일까, 복제 확산될 것일까?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 형태로 소통되고 확산되는 문화는 개인적인 경험을 다중의 경험인 것으로 가능하게 해주거나 착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어떤 지역을 찾아가는 ‘이유’가 ‘나의 취향’에서 출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대 정문에서 부자되기를 기원하는 수많은 중국인들처럼 ‘인간의 공통된 취향’ 또는 ‘조정된 트렌드’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다.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경우는 그 ‘이유’가 국가에 의해 정책적으로 선택된 경우이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시장에서 뜨는, 또는 결국 성공하는 콘텐츠가 모두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억지스러운 선택에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나 문화적 측면에서나 경계해야 한다.     

공공부문이 의도적으로 기획한다면 분명 그 지향점이 있을 텐데, 공공에서 지나치게 편협한 문화적 취향을 강조하는 것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고, 경제적 가치에 경도된 ‘이유’로 시작해서 그에 합당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 뿐만 아니라 다른 가치도 죽이는 근시안이다. 그리고 산업화에는 반드시 공해가 따르는 법이다. 문화를 콘텐츠로 만들어서 산업화함에 있어서 당연히 따라오는 공해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왕 간 이상 별거 없어도 기어이 줄 서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감천마을의 어린왕자>


한참 동안 길게 줄서서 기다린 후 먹고 나온 TV출연 맛 집에서의 ‘감동’은 실제로는 나의 입맛이 아닐 수 있다. 모두가 맛있다고 적은 후기에 맞춘 감동이거나, 나도 그 감동을 기록하여 SNS에 퍼 날라야 할 것 같은, 집단화된 감동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의 개인적인 문화적 경험과 감흥을 수 많은 사람들과 수 많은 시간 동안 공유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문화콘텐츠의 가치이기도 하다. 문화콘텐츠는 다시 현실에서 사람들에 의해 실재로 복제 경험되고, 그 경험들이 다시 문화로 재생산된다. 다만 수천년을 두고 재생산된 문화가 아니라 최근의 콘텐츠화된 문화는 그 순환 주기가 매우 짧으므로, 그 중에서 최소한 한 세대라도 살아남은 문화로 일컬어질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은 것이다. 문화콘텐츠를 건전한 문화로 확산,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복제되어 단시일에 많아 보이는 문화콘텐츠에만 시선을 빼앗겨서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화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매체에 수록된 짧은 글~~>

https://koreancontent.kr/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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