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 이슈페이퍼 2024-10호(2024.10.17)
최근 문화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와 “증거기반(Evidence-based) 문화정책”으로의 전환이 대세입니다. 공공행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 성과주의 기조에 2020년 6월에 제정된 「데이터기반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 등 제도적 압력까지 가세해서, 문화정책에서 통계구축을 강조하는 경향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통계포털 <문화셈터>에서 총 22종의 승인통계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집중 관리형의 통계 체계 구축은 “강조할수록 형식화되는” 공공행정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회변화를 나타내야 할 통계를 공공 정책의 성과와 연결 짓고, 종합 지수화와 경쟁 유발 순위 부여 방식의 통계 관리는,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인간사회의 문화 현상을 문화지표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은 단순히 <숫자와 측정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언어와 개념의 문제>이며, <제도와 관행의 문제>입니다. 독일의 문화경제학자 Arjo Klamer(2004)는 <경제학의 하이젠버그 원리>를 내세워 측정자의 가치 체계와 (특히 정책의) 의도가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측정의 본질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하이젠베르그의 원리를 조금만 더 깊이 파면, 서로 연결된 <전체>를 이해하기 보다는 특정한 <부분>만 강하게 측정할 때 생기는 정보의 손실과 오도된 해석을 경계할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오히려 적절한 선에서 정량적 측정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비교에 필요한 데이터 축적 활동은 이를 생산하는 업무 현장에서의 영역 구분과 수행 방식, 기존의 관례 등 제도적 영향도 받게 됩니다. 특히 국가 승인통계의 경우 관련 법령에 명시된 정의와 이전 조사에 적용된 정의를 준수해야 하는 제도적 압력을 더 크게 받게 됩니다. 서로 다른 제도의 영향 아래에 있는 통계지표들이 개념적 보편성과 구조적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제도적 권위가 가하는 <강압적 동형화 : coercive isomorphism>에 기대거나, 주체들 간의 교류와 합의를 통해 공통의 프로토콜을 만들어 가는 <규범적 동형화 : normative isomorphism>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뜻이 변해버린 말로 이어진 시계열 비교라는 부질없는 지식에 매달리는 것의 비효율성과 무의미함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등장 초기의 유튜브라는 말과 지금 유튜브라는 말의 의미가 다르듯이,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생활 패턴이 사람들의 인식과 표현을 바꾸고 심지어 문화생활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놓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공공행정이 제한적이나마 좀 더 합리적인 문화지표 체계를 구축하도록, <정책기반 증거 : police-based evidence>가 아니라 문화의 변화를 나타낼 문화지표>, <알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서 제대로 알기>, <좁게 조사하고 넓게 이해하기>를 제안합니다. 정책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정책기반 증거 : policy-based evidence>는 통계뿐만 아니라 정책 자체에 대한 신뢰를 갉아 먹습니다. 문화지표는 숫자로 현장을 보여주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파악된 변화를 다시 문화지표 체계에 반영하며 정책의 인식 체계와 추진 방향 변화를 인도하는,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메타버스에서 콘서트를 보고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영화와 게임을 직접 만드는 지금, 여전히 고전적 장르로 구분된 설문지로 예술 관람과 문화 참여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물어서 얻은 숫자의 유효성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문화생활 실태가 어떤지 파악하고 싶다면, 지금 시민들은 무엇을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먼저 묻고, 그것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문화가 <사회적 공공재 : Culture as public goods>(IFACCA, 2024)로 인식되는 추세 속에서, 사회활동 전반으로 넓게 연결되는 문화생활을 폭넓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모습을 폭넓고 면밀히 조사하는 전략보다는, 직접 만드는 숫자는 좁고 깊게 파고, 이미 존재하는 숫자들까지 모아서 전체를 폭넓게 제대로 이해하는 전략을 추천합니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기술은 그것을 촉진하고, 정책은 그것을 진흥 또는 규제합니다. 변하지 않는 어떤 참값이 있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기댄 “강한 측정”으로 기어이 참값을 찾지만 그것으로 부분의 단면도 겨우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약한 측정”(김윤호, 2024)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앎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 시대에 좀 더 진보한 과학이 설명하는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지표로 문화 현장을 파악할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부분”을 정확하게 포착한 “숫자” 자체가 아니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와 “변화”임을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목차>
1. 관련된 이슈들 : 문화지표는 변화하는 문화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나?
2. 곱씹어 볼 시사점 : 제한적으로나마 합리적인 문화지표 체계 구축을 위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