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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보 Apr 04. 2022

예술교육에서 관찰과 기록

예술교육의 진화를 위해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하고 공유하는 과정 

(서울예술교육센터 “관찰과 기록” 관련 글, 2021.12월)


예술교육공간에서의 기록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본부에서는 2021년에 두 개의 큰 기록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관악어린이작놀이터는 2021년 12월 폐관을 앞두고 년 초부터 지난 11년의 과정, 즉 역사를 아카이빙 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반면 서울예술교육센터(용산)은 2020년 11월에 개관부터 기획감독님을 따로 위촉해서 좀 새로운 관점의 기록프로젝트를 준비했고, 2021년에 본격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벌어질 예술교육의 과정, 즉 미래의 역사를 직원들이 직접 <관찰과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한 공간은 종료 시점에, 한 공간은 시작 시점에서 예술교육 <과정의 기록>을 고민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려고 한 것일까요? 공공행정에서 기록이란 행정의 증거, 성과의 정리, 정보의 공유 등 각각 다른 목적과 입장으로 진행됩니다. 최근에는 <공공기록물 관리> 또는 <아카이브 구축>이라는 말로 좀 더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공공기록들은 주로 <데이터>로서 요청되고 활용되기 때문에 객관적이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지요. 그런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운영 실적 같은 숫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예술교육의 <과정>은 이와 같은 기존의 공공행정 기록으로는 오롯이 담아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자 : 청소년 10명, 예술가 2명>이라고 숫자로 정리된 보고서에 담기지 못하는 것들이 많지요. 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 과정에서의 창작의 고민과 웃음들, 예술가 선생님과 주고 받은 대화 속에서의 깨달음과 공유된 희열, 그리고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뿌듯함, 이제 이 공간을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될 것 같은 친숙함 같은 것들이, 예술교육의 과정을 기록할 때 담겨야 할 것들이 아닐까요? 예술교육에 참여한 시민, 예술가, 기획자, 행정가 모두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이처럼 서울예술교육센터(용산)는 이곳에 켜켜이 쌓일 아이들의 손때와 웃음을 기록할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공간이 담아내려고 하는 예술교육의 성과로서 기존의 행정보고서에서 보고되던 실적과는 다른 무엇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획한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관찰하는 마음도 있지만, 기대하지도 않은 무엇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내는 마음으로 관찰하려고 했습니다. 투입된 자원만큼 달성된 성과를 보고하는 <답정너 보고서>가 아니라, 놀랍고 생생한 변화를 공유해주는 <관찰과 기록>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역사 기록의 두 가지 모습 –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 

사관들이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개인적인 일기에서 시작한 『일성록(日省錄)』은 모두 중요한 공적 역사기록입니다. 하지만 그 시점과 태도는 사뭇 다릅니다. 실록을 위해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사건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사관의 태도가 얼마나 엄정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태종의 낙마 사건이 자주 언급됩니다. 태종실록 1404년 2월 8일 기록에는 왕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낙마하였을 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고 명했는데 사관은 심지어 “왕이 그렇게 말했다”고까지 적고 있답니다. 반면 『일성록』은 정조의 개인적인 일기쓰기 습관에서 시작되어 이후 공식적인 왕실의 기록물이 된 것입니다. 정조는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나오는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을 모범 삼아 매일 자신의 언행과 학문수련 내용들을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로 기록했습니다(강문식, 2017)(주1 참조). 원래는 왕이 직접 일기를 썼다가 나중에는 규장각에서 작성한 일기를 왕이 최종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개인의 일기가 아니라 조선 후기 왕들의 공식적인 국정기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일성록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이처럼 제 3자의 관찰기록뿐만 아니라 행위자 본인의 내적 성찰의 기록도 공적인 역사가 됩니다. 행위자의 내적 성찰이 역사적 행위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가의 사실(史實) 선택과 해석의 결합으로 저술되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보다 객관적이고 풍성한 자료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공공행정의 기록이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다는 기록에 그치지 않고 그 일을 왜 했고 당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정책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울예술교육센터(용산)은 재단의 다른 시설들과는 조금 다른 개관 준비과정을 거쳤습니다. 직원들이 비전워크숍을 통해 센터의 철학체계와 경영전략과 비전을 설정하였고, 그것을 개관 프로그램에 적용했습니다. 개관 당시 멤버들이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해 놓는 것은 앞으로 센터의 색깔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평한 오항녕 교수님의 글에서 이런 취지로 진행된 <관찰과 기록>에 대입해볼 내용을 찾았습니다.     


 “실록은 그 자체로 왕조 이후를 상정하는 것이고, 그 구체적 표현이다. 누군가 이런 발칙한 짓을 했다면 반역이다. 이런 반역적 실천은 오직 역사의 이름으로만 가능했다. 그래서 실록은 왕조실록이 아니다. 왕조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들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왕조로 환원되지 않는다. 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남는다........실록은 원래 공문서 정리의 하나였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발달한 관료제의 결과다. 관료제는 자격을 가진 관원(공무원)이, 법규에 정해진 어떤 일을, 일정한 임명 절차를 거쳐 임기 동안 수행하는 조직의 형태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문서가 일을 한다....” (오항년(2021)(주2 참조)    

 

하나의 예술교육공간이 문을 닫아도 예술교육정책은 지속됩니다. 직원이 바뀌어도 예술교육사업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것이 단순한 <전승>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이 되려면, “결국 모두 다 잘 수행되었다”는 연도별 성과기록 보다는, 좀 더 객관적이면서도 풍부한 <관찰>과 <성찰>의 기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담당 직원은 떠나고 “남은 문서가 일을 하는” 방식으로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교육의 가치가 전해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한 사람의 흔적과 생각을 남겨 놓을 기록방식을 고민하게 됩니다.    

   

성찰을 통한 공공행정의 변화 – 주체 없이 가능한가?

성과보고서 작성과 다르게 <관찰과 기록>에 임하는 재단 직원들이 <객관적 관찰>과 <주관적 성찰> 사이에서 고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 본인의 마음을 투영하라는 것이 얼마나 오해되기 쉬운 말인지 알면서도, 예술교육본부장으로서 직원들에게 종종 그렇게 말합니다. 예술교육사업이 정말로 우리가 믿는 예술의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라면, 행정시스템이 일하는 방식으로는 그런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공유하고 성찰하고 행위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일성록과 실록에서 보듯이, 조선왕조라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최고 의사결정자인 왕은 스스로 시스템이면서 동시에 주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공행정을 실행하는 재단의 직원들에게도 그런 주체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Max Weber의 관료론: 기계의 부속품인가, 소명을 실현하는 존재인가?” (이문수, 2008, 정부학연구 vol.14)에서처럼 그 오래된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소명의식”을 제시한다면, 지금은 꼰대로 분류되기 딱 좋은 시절입니다. 저는 오히려 정책이든 기관이든 개인이든, 스스로 진화하는 “성찰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정책도 더 나아지려고 하고, 조직도 더 나은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개인도 당연히 더 성장하고 역량이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진화는 외부와 상호작용으로 일어나지만 누가 억지로 시키는 변화로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최근 경영학에서는 바뀌고 있지만, 특히 관료 조직의 성장 또는 진화는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을 전제하지 않고도 시스템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조직 또는 법인의 오류에 대한 형법적 처벌 가능성에 대한 법리 공방에서는 법인의 대표이사 등 구성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지만 법인 자체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법리가 우세합니다. 그런 법리의 기저에는 법인의 행위는 시스템의 결정에 따른 산출일 뿐이기 때문이며, 법인에게는 과오를 뉘우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지속되는 인격이 없으므로 처벌의 실효가 없다는 관념이 깔려 있습니다. 과오에 대한 처벌만 그럴까요? 지난 행위를 되돌아보는 성찰을 통해 기관이 또는 기관의 행위인 정책이 진화하려면 그 성찰과 진화의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직원들입니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행위가 오로지 시스템의 작동에 따른 결과라면, 그 실행의 성과 안에 가치가 구현되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공공행정 시스템의 기준에 비추어서 “옳은 것”을 판단함과 동시에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목표로 삼고 이에 “좋은 것”을 감식해내는 기획자의 촉이 필요합니다. 시스템에 따라서 한 행위로 감사의 대상이 되지 않은 한 들추어 볼 일이 없는 공공기록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행했고 어떤 성취를 맛보았으며 어떤 반성을 했는지 성찰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의 이런 성찰을 통해서 법인인 서울문화재단이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의 예술교육정책이 나아질 것입니다.     


거리두기라는 테크닉 또는 태도 – 주체의 진화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허용하는...

올해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진행한 <관찰과 기록>은 사실 사업 담당 직원들에게만 필요한 과정이 아닙니다. 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시민, 예술가, 기획자 뿐만 아니라 재단의 관리자 모두가 과정과 변화를 민감하게 성찰하는 내적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요소는 “거리두기”라는 것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예술교육을 실천한 예술가와 기획자, 담당직원은 본인의 실천을 객관화하는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본부장으로서 참 힘들게 지켰던 “거리두기”는 관리자의 태도로서 요구되는 것입니다만, 공공행정이 더 좋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테크닉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공공행정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공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는 결재문서를 실시간 공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성과를 관리하는 경영관리자의 강박은 그 성과를 수시로 체크하려고 합니다. 요즘 공공행정에서는 모든 것이 실시간 수준으로 공개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와 기업을 흉내 낸 성과주의 경영 마인드가 동시에 작동합니다. 그래서 빨리빨리 보고되지 못하는 긴 호흡의 변화는 정책의 성과로 기다려주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예술교육을 통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뻔히 예측되는 자원투입의 성과가 아니라면,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까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적 거리두기와 시간적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서울시는 문화재단에게, 문화재단 본부장은 직원에게, 예술교육가는 교육참여자에게, 주체의 자율적 행위의 공간과 시간을 허용하는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매일 조바심으로 관찰일기를 쓸 때는 몰랐다가, 한참을 잊어먹고 지나서 찾아갔더니 꽃이 만개해있던 화단처럼, 어떤 변화를 허용하는 공간적,  시간적 거리두기는 곧 주체의 자율성으로 얻어지는 변화를 믿는 마음입니다. 이런 태도가 더 좋은 성과로도 이어진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과학적으로는, 관찰자의 의도, 심지어 관찰자의 존재 자체가, 앞으로 일어날 현상자체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예술적으로는, <창발>의 결과가 <계획>의 결과보다 더 멋있습니다. 이처럼, 왜곡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더라도,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하더라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예술교육으로 <만나서 서로 배우는> 주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느끼는 <관찰>과 성찰하는 <기록>으로 예술교육은 진화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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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한 문헌

주1. “조선후기 국왕의 일기 – 일성록” (강문식, 2017, 기록인 Vol.38)

주2.  “사관의 붓은 공론의 시작, 왕‧관료들에 ‘떠든 아이’ 효과” (오항녕, 중앙일보 2021.4.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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