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나는 결과가 없이 구름같이 떠도는 사람이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걸 배웠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알리고 나면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생겨서 정말 이룰 수 없는 현실을 깨닫기 전까지 매달렸다.
나 이번에는 속기사를 공부해 보려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또? 넌 뭘 맨날 공부만 해?
아, 그렇게 비쳤구나 싶었다. 응원을 해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단순한 반응으로 착각했던 걸까?
몇 달 후 다시 만난 그 누군가는 주변 사람한테 뭘 배운다고 하니 그 나이에 뭘 배우겠다고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나도 모르게 무덤덤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번에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같은데?
라고 말했다.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기억도 못 하는 말이었다. 자신이 그런 말을 했냐면서 그럴 리가 없다면서. 극구 내 기억의 착오라 말했다. 그러다 나와 자신의 상황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나란 사람 자체가 친해지기 힘든 타입의 사람이기도 하고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한 편이라 많은 사람을 만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을 체념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한참이 지난 요즘,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 한 사람이 물었다. 나이에 맞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자신은 그 나이에 걸맞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라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어떤 마음을 먹는지.
그래서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고 그때도 지금도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걸 듣고만 있었냐며 자기가 옆에 있었으면
난 배울 여유가 돼서 공부하는데 넌 여유가 없어서 힘들겠다
라고 말해주었을 텐데 아쉽다면서 웃었다.
자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야기가 흘러갔다. 흘러가는 대화 속에 문득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앞서 말한 대처법이 떠올라 미소 지었다. 참 생각지 못 한 발상이다. 그 당당함이 부럽다. 사실 상처받은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들뜬 모습으로 이번에는 이걸 배워보려고, 이 길을 가보려고 말했지만 속으로 난 언제쯤 결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불안, 위축.
공무원 시험을 장기간 한 사람들이 겪는 감정이 있다고 한다. 경력도 없고 결실도 보지 못 한 채 시간을 보낸 덕에 다른 길로 전향하려고 하면 겪는 그런 감정.
전해 들은 타인의 이야기다. 그는 오히려 그 과정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한 게 아니라 충분히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정이었다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것이 28, 종료한 시점이 33. 5년의 과정 동안 난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속기사를 준비하던 1년,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러 다니던 학원 몇 개월,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해 보겠다며 준비하던 어학 독학, 또 무엇을 공부했었는지 적지 않게 시도해 본 듯하다. 그 과정에서 분명 무엇인가 배웠을 것이다. 목적성 강한 공부와 그 결실에 초점을 맞춰 그 과정을 홀대했다.
동기부여 영상에 이런 말이 있다. “도전에 성공과 실패는 없다. 성공과 과정만 있을 뿐.”
난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혼자 물고 늘어지는 그 과정에서 나와 싸우고 시선과 싸웠으면서 무엇을 얻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무언가 배우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
조금씩 기억을 추억하며 꺼내 본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난 무엇을 얻어왔을까. 실패하는 도전이 없다고 하니 조금의 위안을 얻어본다. 비록 현재가 암흑이지만 더듬거리며 익힌 감각들로 길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