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30일에 쓴 독후감
추석을 맞아 연휴 동안 읽어야지 하며 들고온 책이다.
김초엽 작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대해서도 자주 들어왔었는데 그동안 읽지 못했다. sf를 즐겨읽는 타입도 아니기도 하고 이 책을 구매할 기회를 얻지 못했었는데 지난 번에 자치모임에서 필요한 도서를 구매하면서 욕심을 얹어 한 권 더 샀다. 이번에는 추석을 맞아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읽어보고, 읽은 직후에 가지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이야기를 읽은 직후에는 이야기가 주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감정은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고,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시리게 하기도 하고 가슴 한 켠에 물이 들어와 발을 간지럽게 적시기도 한다. 아마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여운일 것이다. 나는 여운을 사랑하지만 잠깐 흐트러지거나 소설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게 되면 여운은 금새 날아가버린다. 사실 이렇게 서론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날아가고 있다. 아쉬우니 이제는 본론을 적어야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첫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었다.
이 소설에서는 ‘마을’과 ‘시초지’(다시 말해서 지구)가 나온다. 시초지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말한다면 디스토피아라 할 수 있겠다. 시초지는 “멋진 신세계”에서 나올법한 공간이기도 하다. 개조인과 비개조인이 존재하는 공간, 그렇기에 차별과 낙인이 존재하는 그곳이 바로 시초지이자 지구이다. 반면 마을은 차별도 낙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늘 행복하다. 전형적인 유토피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고 어쩌면 ‘천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초에 천국도 유토피아의 하나이기에 그게 그거일 수 있지만.
마을의 순례자들은 성인이 되면 시초지로 떠난다. 그리고 몇 사람들은 시초지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나? 어째서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디스토피아로 떠나서 그곳에서 돌아오지 않는걸까? 편지를 쓰는 데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다는 진실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52p 중
결국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사랑이며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비탄이 그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일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이유는 어째서 말이 될까?
그러면 이젠 나에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째서 디스토피아를 사랑하는가? 왜 우리는 이상을 상상하며 끝나지 않을 디스토피아에 몸을 맡기기로 했나. 왜 나는,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나쁘고 화나고 그래서 울기도 하는 이 아픈 세상을, 그렇기에 찬란한 세상을 어째서 사랑하나.
글렀다느니 어떻다느니 말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 내 삶이 있는 이 공간을 사랑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어찌할 수 없는 애정이다. 얼마나 나아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하고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는 건, 그러다 좌절하고 울기도 하고,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 말을 하는 일은 결국 왜 나는 디스토피아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게 한다. 그건 어찌할 수도 없는 애정이었노라고, 논리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것만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같은 책, 같은 소설, 54p 중
만약 내가 소설 속 순례자들처럼 유토피아에서 빠져나와 디스토피아를 발견한다면, 그때 나는 어디를 선택할까? 우리의 유토피아, 차별도 멸시도 혐오도 없고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마을’로 돌아갈까? 아니면 차별도 있고 멸시도 있고 혐오도 있는, 정말 괴롭지만 그래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행복할 ‘시초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지구에 남기로 할까?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시초지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마을역시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는 와중에도 마음 한 구석부터 시초지로 쏠리는 걸 보면, 나는 결국, 나의 어찌할 수 없는 애정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길로 발을 밀어넣지 않을까. 나의 선호는 안중에도 없는, 그런 불가항력적인 사랑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