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ADHD인을 위한 ADHD인의 일상 알아보기
나는 성인 ADHD이다. 그 사실을 안 건, 몇 달 내내, 어쩌면 몇 년 내내 업무가 꼬이고 꼬여 결국 누군가가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묻고 나서였다. 그동안 나때문에 나도 괴로웠지만 함께하는 동료들도 많이 괴로워하고 진빠져 했다. 그 즈음에는 나도 차라리 내가 ADHD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지금 보이는 모든 행동들이 내 의지 박약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라는 말이었으므로.
그런데 그렇다고 진짜로 ADHD 진단을 받아버릴 줄은 몰랐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에 나랑 상담할 때 ADHD가 아닐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풀배터리 검사(그마저도 설문지를 못 채워 하루 미뤘다) 결과, 나는 확실한 ADHD였다.
그리고 나는 ADHD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간 지 2년 정도 됐다.
콘서타를 처방 받았고, 그 후로 집중을 이전보다 잘하지만 여전히 실수는 잦았다.
작년 어느 날에도 크게 실수를 한 나는 수습하라는 말에 그저 가만히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다.
뭘....해야 하지?
내가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그렇게 나는 제미나이를 켰다.
그제야 업무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adhd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능률 저하로 이어지는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누군가(여기서는 제미나이가) 해야 할 일을 순서를 정해주고 알려주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ADHD인에게는 여러 약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의집중력이다.
ADHD를 앓는 사람들은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 비ADHD인들에게 설명한다면, CCTV 여러 대를 켜두고, 모든 CCTV를 바라보면서 CCTV 속 변화 하나하나에 신경써야 하는 사람의 머릿속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장면만 바라보고 싶어도 옆 CCTV에서 무슨 장면이 나타날세라 모든 화면을 곁눈질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걸 약물 치료로 줄였다. 실제로 나의 경우 처음으로 콘서타를 먹었을 때 "그동안 내 눈앞에 있는 일에 대해서 20, 10, 30, 7, 13, 11, 9로 나눠서 에너지가 쓰였다면, 지금은 15 70 15 정도로 나눠지는 기분이야. 에너지가 모이는 것 같아."라는 감상을 남겼었다.(노파심에 말하지만, 비ADHD인들은 절대 ADHD 치료 약물을 먹지 말자. 신경물질에 다이렉트로 영향을 주는 약물을 도대체 무슨 담력으로 삼키려 드는 건지)
그렇다고 완벽히 주의 집중이 된 건 아니었다.
ADHD인들이 겪는 증상 중 하나인 '생각 팝업'이 그 방증이었다.
하나의 일을 끝내려는 와중에도 다른 일이 팝업처럼 떠올랐다. 그 일을 빨리 잡아내야 했다. 지금 떠올리지 않으면 또 놓치니까. 그러면 나는 어떤 일을 하던 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된 거다. 이 상태에서 다른 일이 팝업된다. 그러면 그것도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내 컴퓨터에 십수 개의 창이 켜져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지금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렵다. 도대체 뭐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일단 급한 것부터, 마감이 빠른 것부터 해치우긴 했지만 직장에 가니 그것도 답이 아니더라.
그니까 나는,
할 일의 순서도 정하지 못하고,
겨우 일을 시작해도 산만하고,
일 하나도 끝내지 않은 주제에 다른 일에 손 대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던 거다.
근데 그걸 AI가 도와줬다.
내가 적어 준 생각 팝업들까지 정리해서 할 일의 순서를 만들어주니 나도 머리를 비우고 AI가 제안한 테스크 순서를 따라가면 됐다. 가끔 AI가 정리한 순서가 내 판단으론 맞지 않으면 한두 개만 바꿔 업무를 처리했다. 업무 하나를 잘 해내면 칭찬을 요청하기도 했고, 어떤 업무를 너무 하기 싫으면 동기 부여를 부탁하기도 했다. 나도 ADHD로 2년간 살아오면서 작은 성취감이 다음 업무의 동기가 되는 걸 알았기에 요청한 일이었다. 실제로 나와 AI의 시너지는 매우 높았다. 평소라면 3~4개 정도 빼먹을 일을 모두 놓치지 않았고, 2~3개 정도 다음 날로 미뤘을 일들도 그날 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생각은 적게 해도 됐다. 그때 쯤에야 알게 됐다. 우선순위를 잡지 못한다는 게 업무에 치명적인 증상이라는 걸. 그리고 솔직히, 좀 억울했다.
비ADHD인들은 그냥 된다고? 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이 별개가 아니라고? 업무를 받으면 무엇부터 해야할지 저절로 리스트화가 된다고? 그걸 그냥 따라가면 된다고?
AI와 함께하면서 비ADHD인들의 일상을 알게 된 나는 그들을 향한 질투의 누아르 하트를 팍팍 보내고 있다. 왜 나는 내장 기능 하나가 빠져 있어서 결국 외장 기능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납득되지 않고 억울하다. 상황이 급박해서 ai에 하나하나 할 일을 입력할 여건이 없어 허둥대는 순간마다 더 서러워진다. 나도....내장 기능으로 리스트화가 되면 좋겠다......
비ADHD인들에게 ADHD인들이 어떤 상태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보고 싶다.
당신은 걷는다. 달린다. 그런데 옆에 있는 ADHD인이 가만히 서 있다. 왼발을 떼려다가 오른발로 흙을 박차곤 고꾸라진다. 다시 일어나 왼발을 뗀다. 갑자기 또 가만히 서 있다가 왼발을 뗀 상태 그대로 콩콩 뛰어서 가방 쪽으로 간다. 가방을 들려다가 고꾸라진다. 그걸 본 당신은 ADHD인을 한심하게 보며 빨리 걸으라 한다.
사실 ADHD인은 걸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쉽사리 걸을 수 없다. 걸으려면 왼발도 떼야 하고, 왼발을 앞으로 옮겨야 하기도 하고, 그 왼발로 앞을 짚어야 하고, 오른발로 흙을 박차야 하고, 그 오른발도 다시 왼발 앞으로 옮겨서 앞을 짚어야 한다. 당신은 ADHD인에게 '걸어라'라는, 하나의 테스크(Task)만 줬지만 ADHD인에게는 그 말이 각각 1개씩, 총 6개의 테스크로 들린다. 당신은 걷기 위해 10만큼의 에너지만 필요하지만 ADHD인들에게는 60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60만큼의 에너지가 생겨 걷기로 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ADHD인들은 잠시 서 있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다. 도대체 이 6개의 테스크 중 왼발을 떼는 게 먼저인 걸까, 오른발로 흙을 박차는 게 먼저인 걸까?
겨우 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도 정리했다 하자. 드디어 ADHD인은 왼발을 뗐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팝업한다. 아 맞다 가방도 들어야 했는데. 지금 가방을 들지 않으면 가방들기라는 새로운 테스크를 잊는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 발로 뛰어 가방 쪽으로 간다. 그 상태로 고꾸라진다. 이게 ADHD의 머릿속에서 매순간 일어나는 일이다.
예시가 너무 단순해서 ADHD인들은 바보인가 싶은 오해를 낳을까봐 걱정이긴 하지만 직관적인 이해에는 단순한 예시가 적격일 것 같았다.(참고로 ADHD와 지능 장애는 전혀 다르다. 내가 위 진단서에서 까버린 내 IQ로도 반박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반박하고 싶진 않다. 그냥 두 요소는 상관이 없다.)
비ADHD인들에게 ADHD인은 '걸으라'고 요청한 지가 언젠데 가만히 서 있는 게으른 사람이고 간단한 업무 하나 순서를 못 잡는 멍청하고 무능력한 사람이다. 벌여놓은 일도 수습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을 꺼내두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고 결국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일만 벌여놓고 마무리는 못하는 오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위 예시에서 꺼내놓은 ADHD인의 머릿속을 살펴보자.
정말 ADHD인은 게으른 사람일까? 멍청할까? 무능력할까? 오지랖 넓을까? 오만할까? 대답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ADHD 당사자로서 자기변호를 과하게 하거나 자위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조금은 억울했달까. 생각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ADHD인들에게, 혹시나 당신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진 않았음 좋겠다는 바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