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8일 게시글
"노동조합 조합원은 재계약 안 한다"던 00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안녕하실까요
이것은 2021년 8월에서 10월에 있었던 이야기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이후 00대학교의 청소노동자가, 경비노동자가, 이들의 노동조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만남은, 희망찬 미래를 예견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21년 8월, 부천시 소재의 대학 청소노동자 노동실태를 조사할 기회가 생겼었다. 그때 00대학교 청소노동자 노동조합과 만났다. 00대학교 청소노동자 노조원들은 적극적이었고 열정적이었지만 그만큼 00대학교의 청소노동실태는 열악했다.
한 청소노동자는 청소과정에서 당연히 희석해야 하는 독한 화학약품을 물에 희석하지 않은 원액 그대로 1년에 100통 이상 사용하다가 쓰러졌다. 근처 대학인 000대학교에서는 1년에 1번, 대청소 때에만 한 통을 사용하는 약품이었다. 야외청소노동자에게는 휴게공간이 제공되지 않았고, 무더운 여름에 휴식을 위해 강의실에 들어가 에어컨을 켜놓으려 했으나 이조차 소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가장 화가 났던 건 노조파괴 공작이었다. 반장과 사측은 조합원에게 탈퇴 공작을 벌였고, 청소노동자들을 불러모아 "노동조합 조합원은 재계약 연장을 안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에 소속된 청소노동자는 업무량이 많고 힘든 청소구역이 배치되었다. 노조위원장은 혼자서 외부 관리를 전부 담당해야 했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연차휴가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불허했고, 앨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모 조합원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그를 인사조치해야 한다며 여론을 만들기도 했다.
이 일이 하청업체인 000의 단독적인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소장이 어떤 청소노동자에게 접근해 노조탈퇴를 권유할 때, 그는 "학교에서 시켰다"고 설명했다. 00대학교가 소장에게 노조탈퇴공작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또한, 정년 연장의 경우 000에서는 이를 인정했지만 00대가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원청과 하청이 노조파괴를 위해 담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사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조합 조합원은 계속 줄어들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하던 8월에는 8명이었던 조합원이 다음에 만났을 땐 5명으로 줄었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을 때는 3명으로 줄어 있었다. 만날 때마다 줄어드는 조합원들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겨울에 이들은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함께 조사를 하던 노학연대단체는 함께하겠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런 말을 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적어도 이들과 만나는 동안, 나는 한 사람당 한 병씩 주었던 비타오백을 깨질듯이 쥐고 있었다. 차라리 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만큼 내가 분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조합과의 만남이 끝나고 노학연대단체에 무엇이라도 하고싶다고 말했던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그후에 내가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했을 것이다. 내가 속한 단체는 나를 포함한 운영진들이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라지기 직전이었고, 나는 그때 조사보고서와 중간고사, 졸업논문을 동시에 작성하고 있었으니 아마 여력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00대를 지날 때마다, 00대를 생각할 때마다 이들이 어떻게 되셨는지 생각하게 된다. 혹시 현수막을 걸진 않으셨는지, 투쟁을 하셨는지, 혹여 조합원이 더 줄어 결국 파괴되거나, 모두 해고당하시지는 않으셨을지. 겨울에 투쟁을 하시겠다고 했는데, 벌써 봄이 되고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반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나는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그러면 자꾸 00대를 생각하다가, 그분들의 안녕을 예상해보려다가, 그러지 못하셨을 것 같아서 그것에 괴로워하는 것으로 생각을 맺어왔다. 어떤 투쟁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주목받지 않는 곳에도 어떤 투쟁이 있다는 걸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면, 주목받지 않는 투쟁은 그저 굴복해야 하나? 그렇다고 멀고 힘들고 외로운 길을 가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투쟁은 외롭고 조용하다. 순간보다 일상이 된다면. 강남역 72미터 위가 그러했고, 김천 톨게이트가 그러했고, LG트윈타워가 그러했다. 집회가 끝난 공간에 연대자가 사라지고 투쟁하는 사람만 남았을 때의 지독한 외로움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투쟁이 일상이라는 걸, 그래서 매우 조용하고 외롭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순간조차 조용하고 외로운 투쟁은 어떻게 되나. 연대자가 없는 투쟁자는 어떻게 되나. 연대자를 얻지 못한 투쟁지는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렵다.
무력감이 싫어서 광장에 다녔던 것 같다. "열 줄의 기사보다 한 줄의 대자보가 더 큰 변화를 만든다면 나는 당장 키보드를 던지고 광장으로 가야 하지 않나" 말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하다. 내가 보도를 해봤자 아무도 내 기사를 읽지 않고, 내가 글을 써봤자 아무도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 그러면 읽지 않은 기사와 읽지 않은 글은 결국 어떤 변화도 만들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광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외치면 들어주는 것 같았다. 대자보 한 줄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여론전만큼은 나쁘지 않게 해낼 수 있던 것 같았고, 그래도 광장에 나서서 인파와 함께 외치면 무언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자꾸 흔들린다. 내가 더이상 그때와 같은 열정과 관심으로 이슈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이미 나는 지쳤고 완만한 일상을 사랑하려고 하고 있다. 그때의 열정은 이제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에 쓰고 있다. 투쟁을 업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평생을 하기엔 용기가 없었다. 내 일상을 전부 던질 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이제 광장을 향하지도 못하는 걸까? 그저 멀리에서 작은 응원을 보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걸까? 그걸 인정하면 이 무력감조차 버릴 것 같아서,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다.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으니까. 광장을 향하기로 한 사람은 광장을 향해 갈 때, 나는 글을 쓰기로 했으니까 글을 쓴다. 그게 이 글이었는데. 팩트를 읊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글을 적을 수 있다면 그래도 무언가 바뀌지 않을까 희망했는데. 그걸 해낸 것 같진 않아서 또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