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9회 협성독서왕 입선작
이 독후감은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고 적었습니다.
2014년의 누군가에게 2020년 7월에 편지를 보냅니다. 2020년에서 2014년으로 보낸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김연수 작가님의 말마따나 과거에서 미래를 훔쳐볼 수 있다면 이 글도 당신에게 닿을 거로 생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질문하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답을 알면서도 질문하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답을 해야 합니다. 안녕치 않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안녕치 않았습니까? 저는 4월 16일, 우리가 모두 목격했던 그 배와 관련된 일련의 일들 때문에 안녕치 못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요. 선생님 몰래 핸드폰을 내지 않은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갔다 오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려줬습니다. 이윽고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그 배 이야길 하셨습니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뉴스거리 중에 좋은 소식이랄 게 있던가요. 사고는 늘 일어나는 법이고 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말입니다. 사실은 모두가 구조된 게 아니라는 끔찍한 정정 보도가 이어지던 순간, 그때를 기점으로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온 국민의 잠을 설치게 한 악몽 말입니다. 초반에는 예능 하나 없이 파란 바다 사진으로 뒤덮인 화면을 보았고 시간이 지나자 화면 한쪽에 자그마한 표가 생겼습니다. 몇 명이 살았고 몇 명이 죽었는지를 보여주는 명부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꿈처럼 조각조각 나뉜 비현실적인 장면들만 생각납니다. 노란색으로 물들던 메신저 프로필 사진, 선수 바닥이 하늘로 향했던 진도 앞바다, 광화문 천막, 맞은편에서 폭식해대던 사람들.. 무언갈 본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팽목항으로 달려갔다면 더 많은 걸 기억할 수 있었을까요? 그날 팽목항에 갔어야 했다는 후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진해졌습니다. 지금도 후회합니다. 그날 똑똑히 모든 것을 봤어야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막연한 이미지와 희미한 감정만 기억할 게 아니라, 그날 누가 울었는지, 누가 화를 냈는지, 누가 죽었는지, 누가 조롱했고 누가 이 모든 상황을 보면서도 침묵하였는지 보아야 했습니다. 기억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생각나게 합니다. 눈앞이 하얗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도시는 정말 잔인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목숨도 인권도 짓밟히는 장면은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합니다.『눈먼 자들의 국가』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국가로 넓혀둔 것만 같습니다. 꼭 온 국민이 백색실명에 걸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목숨도 인권도 진실도 모두 짓밟혔지요. 『눈먼 자들의 도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저 읽고 넘길 수 없었습니다. 침몰하던 세월호를 읽어낼 때마다 화가 나서 손끝을 가만둘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주먹을 세게 쥐고 허벅지를 찍고 바지를 한껏 구기고 책상을 긁고.. 그러나 달라질 건 없었습니다. 이곳은 2020년이니까요. 2014년에게 묻습니다. 정말 그것이 최선이었을까요. 가만히 있으라던 선장의 말을 믿는 것이, 전원 구조되었다던 언론의 말을 믿는 것이, 최선을 다한다던 정부의 말을 믿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요. 그런데 믿지 않는다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 최선이었을까요. 우리는 그날로 많은 것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사라진 국가에서 우리는 자신만 믿기로 했습니다.
2014년의 당신이 “2020년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흔쾌히 안녕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이 계속 생겨납니다. 2014년 이후로 저는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많은 것을 목격했습니다. 안전장비 없이 일터에 들어간 노동자의 비명소리와 터전을 잃고 마는 상인들의 울음소리와 디지털 세상 안팎에서 성적으로 소비되다 죽는 여성들의 성난 소리를 들었습니다. 더는 국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다가 광장으로 뛰쳐나가기로 했습니다. 광화문으로, 혜화역으로, 강남역으로, 구의역으로, 국회 앞으로, 법원 앞으로, 또다시 광화문으로 나갔습니다. 무엇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 죽으면 안 된다는 그 생각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안녕한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싸우고 있습니다.
이 글을 누가 받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배 안에서 살 궁리를 찾던, 그때는 저보다 한 살 많았던 그네들이 받을지, 매일같이 뉴스를 지켜보며 어느 날은 울고 어느 날은 기도하던 그네들이 받을지, 그만 좀 애도해라, 깨어있는 척 그만해라 말하던 당신들이 받을지, 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일을 기록하려는 당신들이 받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잊지 않는다는 확언입니다. “잊지 말아 주세요!” 유가족들이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들립니다.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잊지 않기로 했습니다.
엄마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유가족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어느 분이 그렇게 말했다지요. 이젠 울기만 하는 시간이 끝났습니다. 주저앉아 울다가도 일어나 걸을 준비를 할 겁니다. 기록하고, 바라보고, 듣고, 외칠 것입니다. 그렇게 바꿀 겁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누구도 죽지 않고 울지도 않고 아파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 곳을 말입니다.
어느새 편지에 끝이 보입니다. 2014년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하니 다음에는 2026년에서 편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거기는 안녕하실까요. 안부를 묻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는 희망찬 소식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