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2 中

22년 7월 기발행

by 잔시옷
이 글을 웬만하면 브런치에 올리고 싶진 않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이후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 글들이 있어, 맥락상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올립니다.

※ 이 글은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가 담겨 있습니다.

원본 시리즈 시작 글 : https://blog.naver.com/lhyunni/222773421653



(중략)


이 이야기를 길게 기록해 두는 게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기록해 두는 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최대한 아름답게 적어내려는 노력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차라리 우리가 소설 속의 인물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아름다운 문장에 대답하듯 나도 그렇게 아름답게 적어내고 싶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의 이야기가 그저 비극을 겪은 소설 속 두 인물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바뀔 것 같았다. 동시에, 이런 상황이 왔는데도 글을 써내려고 한다는 게 정말로 끔찍한 일 같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 말했다. 글을 쓰는 일은 사실은 저주 같은 거라고. 설령 언젠가 우리가 이 슬픔을 모두 소화시켜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대도, 그것은 꺼내두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일일 거라고.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발행하는 건 결국 언젠가를 위해 지금을 기록해 두는 일임과 동시에 결국 글을 쓰는 일이 저주 같은 거라고 변명하는 일일 테다. 사실은 누구보다 말하고 싶었으면서 말이다.




저 때는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지금은 불안하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저만큼 불안하진 않은 것 같다. 예상하고 있는 그 사람의 흔적은 가만히 쳐다보고 예상하지 못한 흔적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지난주에 비슷한 일이 생겨 친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나도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 아까 말한 것 같은 그런 일이 없다면. 적당히 일을 하고 적당히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부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간간히 이렇게 생각에 잠긴다. 목요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상담사 선생님께 말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잘 대처하는 것 같아서 놀라신 것 같았다.


그러므로 위에 적어둔 글에 대해 변명하고 싶었다. 글만 보면 나는 많이 무섭고 두려워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나도 내가 가진 감정들이 어느 정도로 복잡한지는 꺼내놓아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 (적어도 그 일을 하려면 옆에 누군가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다만 온전히 두려워하고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무서워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어떤 슬픔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어떤 모습의 슬픔인지는 모르겠다.


(중략)


이 일을 생각하면 죄책감과 슬픔, 미안함과 두려움, 무서움과 혼란스러움이, 이름이 있는 감정인데도 느껴보지 못한 결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다. 이 복잡함을 잘 풀어내야 마침내 무언가 끝날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나는 아직도 K의 어머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K가 있는 곳을 찾아가지 못했다. 장례는 가족들끼리 조용히 치를 거라 했고 K의 본가는 멀었다.(그리고 K의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우리는 K의 집을 치웠다.) K의 가족들이 마음을 정리하는 동안(정리한다고 될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K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서 여쭈어봤는데 K가 본가 마당에 묻혔다고 말해주셨다.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게 많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자신이 없다. 그 짙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건 그날 만나 뵌 몇십 분 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K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그날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도 언젠가는 찾아가야 할 테다. 언젠가 K에 대해 그의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할 거고 못했던 인사를 나누어야 할 거다. 그날은 너무 경황이 없었으니까. K의 뒤통수에 대고 K의 강아지에게,

미안해. 진짜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은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어쩐지 나는 그날에도 K라는 이름의 소설책 하나가 마침표를 맺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후라는 것도 모르겠고 귀신이라는 것도 모르겠었다. 천국이나 지옥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걸 생각하는 편이 더 잔인한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냥 더 이상 써질 수 없는 어떤 이야기가 마무리된 기분이었다. 다시는 이어지지 못할 이야기가.


그러나 나는,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적어낼 테다.

그것이 이렇게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다시 살아내 보려는 이야기일지라도.


결국 마지막까지 글을 쓰겠다는 말 같아서 조금은 비참해지기도 하는데 그저 우리에게 배당될 페이지를 우리의 방식대로 꾸며나가겠다는 말이라고 생각해 주면 고마울 것 같다. 괴로울 정도로 국문과스러운 비유와 가치관이라고만 생각해 주셨으면. 없으면 어차피 안 쓴 그의 페이지를 찢어서 내 이야기 뒤편에 덧대 붙여 넣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보겠다는 다짐이라고만 생각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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