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석 May 17. 2016

황금 파도
7화

최민석




정치란 정치인한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 

샤롤르 드골(1890-1970)




#7



기혁은 목동의 한 백화점 정문 앞에 서 있다. 


노이쾰른 맥주는 제가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가 서운한 듯 말했다. 


아니기혁 총각 이렇게 가버려서 어떡해


그러게 말이야우리 딸 과외도 해줘야 하는데 말이야지겨워지면 돌아와


과외는 빠질 수 없다는 듯이 작별의 순간에 한 마디를 얹었다. 

그러다, 눈을 찡긋거리며 웃음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불러야 해


기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기혁 총각이라 해주세요예전처럼


뒤에서 기혁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이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의원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천지가 개벽을 한 것인가. 아니면, 고작 맥주나 마실 줄 아는 남자에게 천운이 따른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젊은 술꾼의 말에 담긴 일말의 진심을 읽어낸 것일까.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선거란 하나의 생물처럼 자생력을 지녀 스스로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굳이 말하자면, 지금껏 언급한 모든 것이 전혀 틀린 말만은 아니란 것이다. 


기혁의 연설은 SNS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줄곧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었던 기혁은 개표 당일 놀라운 반전을 보였다. 한국당의 상대 후보와 무려 득표율 10% 차이로 당선됐다. 여론 조사에서 20% 포인트나 뒤진 게, 민중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오히려 집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패권 싸움을 하며 구태의연한 정치를 보여줬던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 역시 기혁에게 반사이익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집권당인 한국당의 정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민심이 거세게 일어나, 민중당은 엉겁결에 제1당이 되는 예상치 못한 결과까지 맞이했다. 이런 판국이니, 수도권에서는 누가 나오더라도 여당 텃밭인 몇몇 구를 제외하고는 죄다 민중당 후보가 당선된 꼴이 됐다. 그리하여, 이제 정치 9단인 정민이 어쩌면 정치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한 기혁의 내면에 정치에 대한 꿈이 꿈틀거렸냐고? 이 질문은 여러분도 나도 직접 할 필요가 없다. 굳이 궁금하지 않은 것까지도 매번 알 권리로 포장하며 질문하길 좋아하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혁 당선자님이번 선거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일각에서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 부릅니다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실 건가요?


벌써부터 온라인에서는 팬카페가 생겼습니다지지자들이 급증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정계 활동을 어떻게 펼치실 건가요?


일일이 옮겨서 뭐하랴. 단어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의 무수한 질문이 기혁의 귓가에 쏟아졌다. 이에 대해 기혁은 가장 그답게 대답했다. 


오늘은 맥주 한잔 하고 푹 잘 겁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내일 아침부터 한 분 한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릴 생각입니다인사드리며 원하시는 걸 귀담아듣겠습니다


이게 대답의 전부였다. 기혁은 이렇게 무수한 카메라와 마이크를 뒤로 한 채, 축하 인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선거캠프를 나섰다. 지난 나흘간 유세를 다니느라 다섯 시간도 못 잔 그였다. 지친 기혁은 집으로 돌아와 습관처럼 TV를 켜고,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를 살 시간마저 없었던 탓에, 냉장고에는 선물 받은 캔맥주 몇 개뿐이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보람차게 일을 마치고 마침내 맥주를 마시는 순간, 이때가 바로 기혁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 아닌가. 몇 분 후 방안에는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울렸다. 기혁은 손이 얼 듯한 캔맥주를 쥐고선 단숨에 꿀떡꿀떡 목 안에 털어 넣었다. 목울대가 몇 번이나 움직이고 나서야 마침내 기혁은 젖혔던 고개를 되돌렸다. 그리고 비어낸 캔을 구겨 뜨리며 뜻밖의 혼잣말을 내뱉었다.  


‘뭐야. 오늘 같은 날에도 맛이 없어?!’ 


국내 매출 1위의 한강 맥주. 시장 점유율 64%라는 막강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 맥주를 만들고 있는 대기업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쓰고 있다. 바로 기혁을 정리해고했던 그 기업이다. 기혁의 얼굴에는 자신의 당선 소식을 알리는 TV 불빛이 어른거렸다. 화면의 빛을 받은 기혁은 말없이 오랫동안 맥주캔을 쳐다봤다. 


TV에서는 아까 기자가 한 질문이 나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정계 활동을 펼치실 건가요?


기혁은 그 질문을 골똘히 생각했다. 




                                                                                   *


20대 국회는 완전한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다. 한국당이 122석, 민중당이 123석, 국민당이 38석, 진보당이 6석, 무소속이 11석을 차지했다. 물론, 우여곡절도 겪었다. 불과 한 석 차이로 민중당이 제1당이 되자, 한국당은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나가 당선된 의원들의 복당 신청을 받아줬다. 민중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제1당의 이름이 어느 날은 한국당이었다가, 어느 날은 민중당이 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석수가 여당 의석수 보다 많아, 한국당의 독선적인 단독 법안 통과는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난관은 기다리고 있었다. 민중당 역시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한국당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야당 3당이 모두 찬성하더라도, 한 법안이 쟁점 법안으로 상정되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전체 의석인 300석의 5분의 3, 즉 총 180석의 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야 3당도 여당도, 그 어느 쪽도 단독으로 180석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로써 20대 국회는 이제 완전한 적도, 완전한 동지도 없는, 타협과 거래의 장()이 되었다. 때로는 전략적으로 적과의 동침을 해야 했고, 때로는 과감하게 어제의 동지와 등져야 했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정국이 돼버린 것이다. 


어느덧 2016년 5월 30일. 드디어, 기혁이 의회에 등정하는 첫날이다.  


우아이걸 누르면 법안 찬반 투표가 결정되는 건가요?


그렇지클릭을 하는 거야그럼모두 집계되어 왼쪽에 벽에 걸린 큰 화면에 결과가 뜨는 거지국회의장이 서 있는 가운데 왼쪽 벽의 모니터에 말이야


정민은 기혁을 국회로 끌어들인 장본인인 만큼, 기혁의 정치 선생을 자처했다. 


종이에 이름을 써서 내진 않고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 TV에서 봤겠지만저기 가운데가 국회의장석이야1당에서 선출을 하지


국회 의장석 앞의 단상은 붉은색의 나무로 덧대어져 장식이 되어 있었고, 의장석의 왼쪽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의장석의 머리 위에 국회를 상징하는 커다란 무궁화 무늬 안에 ‘국회’라고 쓰여 있었다. 


그나저나저는 이제 어쩌면 되죠


한자로 자신의 이름이 쓰인 명패 앞에 선 기혁이 물었다. 


걱정 마이미 말했잖아자네는 우리가 짠 판에서 쓴 각본대로 연기만 해주면 된다고


기혁은 선거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하나 약속을 드린다면 저는 여러분을 속이지 않겠습니다맥주는 정직하게 하루를 보내고 마실 때진짜 맛있습니다맥주는 바로 나에게 주는 보상이기 때문입니다맥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직하게 소통하고여러분의 의견을 들어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키고지킬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순간, 계란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시민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기혁은 명패를 보았다. 장기혁(張起革) ‘널리 혁신을 일으킨다.’ 그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 쓰여 있었다. 명패를 한동안 바라본 기혁이 마침내 정민을 향해 대답했다. 


그럼노이쾰른 맥주는 원 없이 마실 수 있는 거죠헤헤. 


자신을 보며 속없이 성글벙글대는 기혁을 보며 정민이 말했다. 


언제든지오늘 어떤가역사적인 첫날을 기념해야지?


당연히 좋죠!


기혁은 아이보리 색에 갈색 팔걸이가 덧대어진 의자를 탁자 안에 쑥 밀어 넣으며, 정민에게 서둘러 나가자며 길을 터줬다. 


이 친구 성미하고는.


방사형으로 의자가 펼쳐진 국회 본회의실에서 마치 홍해처럼 갈라진 가운데 길을 걸으며 정민을 말을 덧붙였다. 


자네는 맥주 하나면 다 되는군!


기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단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웃으며 국회에서 함께 나서는 정민과 기혁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어느새 기자들이 몰려온 탓이었다. 참고로, 다음날 신문에는 이런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민중당 실세를 등에 업은 정계 신성 장기혁’



그나저나당장 뭐부터 하면 되죠?


막 여의도를 벗어난 차 안에서 기혁이 물었다. 


일단내일 TV토론회부터 따라오게


? TV 토론회요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거니까


그러면서 정민은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내일 나 하는 것 보고 좀 배워둬


장기혁과 유정민, 이 둘을 태운 검은색 세단이 노을로 붉게 번지기 시작한 강변북로 위를 매끄럽게 달리고 있었다.    




                                                                                   *


생방송 십 분 전입니다


대기실에 있는 정민에게 FD가 와서 자리에 착석해달라고 알려줬다. 


가시죠의원님


기혁 역시 정민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민이 울상이다. 사흘간 죽 하나 못 먹은 사람처럼 얼굴에 핏기가 없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나고 있었다. 그 탓에 방송용 분장이 지워져 얼굴은 흉측하게 번져 있었다.  


아니 왜 이러세요의원님?


기혁이 다급하게 묻자, 정민이 손으로 배를 움켜잡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고노와다


이제야 밝혀서 미안하지만, 정민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다. 아, 정치계가 어떤 곳인가. 술수와 모략이 난무하는 곳에서 책략가로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계략을 꾸며내고, 전략을 세우느라 골머리 앓은 정민은 머리뿐만 아니라 장까지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있었다. 게다가, 한때 문예지에 소설까지 발표하며 예술가적 기질을 뽐낸 그이기에, 예민한 천성이 그의 장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한 기관이 실시한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순위 조사에 따르면 그 불명예스러운 1위는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2위는 바로 정치인이 차지했다. 그러니 뻔뻔한 정치인이야 잘도 버텨내겠지만, 정민처럼 겉으론 센 척해도 속으론 심약한 유생형 인간들은 하나같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정민은 지속도 모르고 허구한 날 해삼 내장을 곁들인 ‘광어 고노와다’를 즐겨 먹었다. 어제도 노이쾰른에서 거하게 한잔 한 뒤, 집에 가겠다는 기혁을 굳이 자신의 단골집에 끌고 가 광어 곁에 나온 해삼 내장을 담뿍 찍어 먹었다. 


이게 제맛이지남자라면 이런 걸 듬뿍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정민은 의자에 누에고치처럼 몸을 접은 채 겨우 입을 뗐다. 


자네


?


기혁이 불안에 젖어 대답했다. 


가서 시간 좀 때우고 있어


아니이게 빵구 난 타이어도 아니고제가 어떻게 때웁니까


그러나, 애타는 기혁은 더 이상 정민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배를 움켜잡고 엉거주춤한 채로 대기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의 한 손에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보물처럼 꽉 쥐어져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자, 이제 기혁은 텅 빈 대기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남은 시간은 불과 2분 30초. 기혁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정적 속에 마치 인공호흡기가 멎으면 들리는 사망 신호음 같은 소리만 ‘뚜-’ 하고 환청처럼 들렸다. 그때였다. 


뭐 하세요어서 안 들어오시고


골프공처럼 커진 눈으로 멍하게 서 있는 기혁의 손을 붙들고 FD는 달리기 시작했다. 


인사돌 모르세요?! 이가 없으면잇몸으로


FD가 기혁을 정민의 자리에 앉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ON AIR’라 쓰인 표시등이 딱 켜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파도 6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