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피투성이 소나타

5화

by 김명현

한 올의 실이 모여 아름다운 양탄자를 이룬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단과자빵을 만든 시현은 오븐의 스위치를 내렸다. 두 타임으로 나눠 만든 단과자 빵들이 한가득이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작은 빵들은 먹음직스러운 연갈색을 띄고 있다. 아기자기한 색감으로 빛나는 세모지고 네모난 모양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짐승 떼를 연상케하는 귀여운 모습. 근사한 향을 발산하는 섬세한 빵들은 평소 만드는 식빵들이 무척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간은 오전 열 한시. 재료비는 십만원이 조금 안되게 들었다. 라테 아트 연습을 하며 기다리는 사이 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차량이 도착했다. 빵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플라스틱 박스 여섯 개가 가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능숙하게 후진하는 트럭은 엔진 소리 좋은데다 번쩍번쩍 빛이 났다. 차량 정비가 취미이자 일과인 운전수 광수 아저씨가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함께 박스를 싣는 두 사람은 딱딱 호흡이 맞았다. 광수 아저씨는 시현의 비정상적인 힘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함께 쌀을 나르는 봉사활동을 할 때 시현이 40kg 쌀 포대를 한손으로 휙휙 던지듯 하는 걸 본 것이었다. 시현이 평소 비밀로 하는 자신의 힘을 드러낸 건 광수 아저씨의 순박함을 믿었기 때문. 오늘도 광수 아저씨는 시현이 차갑게 내려준 아이스 캬라멜 마키아토를 마시며 세상 걱정없는 초등학생처럼 웃었다.

"오늘 복권 번호가 나와. 내가 일등 되면 시현 씨가 타준 커피 값 시세의 열 배로 쳐줄게!"

"커피는 서비스입니다."

"그렇담..그래! 닭가슴살 제일 비싼 걸로 일년치 준다!"

"반찬 가게 아주머니 주선으로 좋은 거 먹고 있습니다."

"으으음..! 그렇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커피 한 봉투!"

"감사히 받죠."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광수 아저씨는 하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일견 건강하게만 보이는 중년이었지만 조금만 눈여겨 보면 왼쪽 팔 다리에 가끔씩 미세한 경련이 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겠네. 이렇게 맛있는 빵을 드실 수 있으니까. 시현 씨, 부담되지는 않아?"

"별 거 아닙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하는 일이니까요."

"나도 시현 씨처럼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참 좋았을 텐데."

광수 아저씨는 문득 담배를 찾는 몸짓을 했다. 시현의 눈빛은 평소처럼 감정이 없었지만 아저씨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주식 투기에 빠져 가족들을 내버려 두고 돈만 보고 살았던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돈을 잃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가족의 헌신적인 간호로 전신 마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게 고작 오년 전이었다. 시현은 담배를 끊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맛있는 레몬 사탕을 하나 건넸다.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며 이렇게 봉사활동도 열심인 광수 아저씨의 지금을 격려하듯이.

고아원과 양로원으로 빵을 모두 인계한 시현은 발효종 상태를 체크한 후 작업장의 불을 껐다. 빛나는 나무는 매주 일요일에는 문을 닫았다. 휴일의 반나절을 투자해 빵을 전달하고, 나머지 반나절 동안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시현의 휴일이었다. 대형 서점이나 백화점 지하 1층이 주로 찾아가는 곳. 제과제빵과 커피 관련 서적을 읽거나 형형색색의 음식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일요일 점심은 늘 닭가슴살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였다. 현미 밥이 빵으로 바뀌었을 뿐, 평소 식사와 똑같은 구성이었지만 탁 트인 공원에서 먹는 식사는 각별한 맛이 있었다. 새로 출간된 제과제빵 이론서를 읽고 대형 제과점의 화려한 빵을 맘껏 구경한 시현은 느린 걸음걸이로 시장 거리로 돌아왔다. 이제부터가 시현에겐 중요한 한 때. 시장과 상가를 거닐며 소문을 모으는 시간이었다. 초기엔 일요일에 문을 닫는 빵집이 있느냐며 뭐라 하는 이웃도 있었지만 평일 동안 시현의 고된 작업량이 알려지자 대부분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분주한 시장을 거니는 사이 예민하게 발달된 청력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장사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말을 걸기도 했고, 일주일에 육일 동안을 가게에만 있는 입장이지만 인근의 소문을 꿰고 있을 만큼 주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작은 꽃가게 앞을 지날 때였다. 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꽃다발을 잘 만드는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늘 손님들에게 예쁜 꽃을 하나씩 서비스하던 싹싹한 할아버지. 가게 문을 닫지는 않은 것 같다. 시현은 조용히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알싸하게 베어 나오는 꽃향기에 취하기 전 기척을 숨기고 사람 소리가 나는 가게 안을 들여다 본다. 스물 네살인 외동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힘을 주어 누워있는 아버지의 팔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 자리에 누워 있는 꽃집 사장님은 안색이 창백했다. 사장님, 지선 할아버지는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육아와 살림, 생계를 전부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아내가 죽기 전 늦둥이로 얻은 외동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꽃집을 운영하던 건강한 모습이 거짓말 같다. 시현은 끝까지 기척을 숨기고 은밀히 가게를 빠져 나왔다.

문을 나서자 마자 반찬 가게 둘째 딸 시우와 마주쳤다. 쇠고기 장조림과 김치. 두부 조림을 한 아름 들고 있는 시우. 시현은 나직한 목소리로 꽃집 사정을 물어 보았다.

"지선 할아버지, 오일 전에 뺑소니 사고를 당했대요. 돌아가시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모양이라더구요. 돌볼 사람이 없어서 그집 언니가 학교도 안 가고 병수발을 하고 있다고 해요. 저희 집에서 남는 반찬은 드리고 있는데..너무 안 된 것 같아요.."

시우는 진정 안되었다 생각하는지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시현은 시장 마트 중 가장 큰 곳을 찾아가 생수 한 묶음과 쌀을 한 포대 사와 꽃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쪽지에 '힘내렴, 빵집 아저씨가'라고 적은 후 발걸음을 돌리는 시현은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가게로 돌아온 시현은 샤워하기 전 쪽방에 엎드려 교대로 손을 바꿔가며 한 손 팔굽혀펴기를 했다. 근육의 통증과 지면으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느끼며 하나하나 숫자를 세는 중 꽃집 지선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잠깐이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느낌으로 병수발을 하던 외동딸의 눈빛도 생생했다.

"백구십팔..백구십구..이백..."

간단한 트레이닝을 마친 시현은 샤워를 한 후 내일 아침 반죽을 쳤다. 탄성이 생긴 밀가루 반죽 두드리는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는 사이 낮의 일이 떠올랐다. 지선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킬 저축은 있겠지만 딸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한사코 거부한다는 소문을 떠올리니 반죽 상태를 놓질세라 몇번 씩 기계를 끄다 켯다를 반복해야 했다. 발효실에 반죽을 넣고서도 긴 한숨에 세어나온다. 딸은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것만은 절대 안된다며 거의 애원을 했다고 했다. 잠깐 본 거지만 시현의 관찰력은 할아버지의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이도 있으시니 병환이 쉽게 낫지 않을 텐데..시현은 오늘따라 반죽 통을 설거지하는 손이 자꾸 헛도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휴학하기 위해선 일단 학교에 들러야 할 텐데. 나는 하루 풀로 일하니 어떻게 해주지도 못하고. 평일 오전에 한가한 할머니들이 계시던가. 그 할아버지네 사정을 봐줄 이웃들이 있을 텐데..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시현은 잘 시간이 되자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가게에 오시는 분들에게 얘기해 봐야지. 다짐하면서.

월요일 아침. 오전 손님을 맞이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 쪽지를 봐가며 상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곧 빛나는 나무로 들어온 손님은 향긋한 빵 냄새에 의식을 빼앗길 법도 했지만 중요한 일이 있는지 시현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아름드리 꽃집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뺑소니를 당한 지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꽃집이었다. 특별히 숨기거나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아 시현은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청년은 옥수수 식빵을 하나 샀다. 그의 눈엔 올곧은 젊은이 특유의 정직함과 성실함이 엿보였다. 시현은 별 뜻 없다는 늬앙스로 살짝 입을 열었다.

"그집 사장님이 요즘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시더군요."

"네에? 그래요? 연희가 며칠 때 학교에 안 나온다고 해서 찾아온 건데..."

연희는 꽃집 외동딸의 이름이었다. 서둘러 찾아가려는 눈치의 청년을 일단 진정시킨 후 시현은 새로 들여온 테이크 아웃 커피 잔에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카페라테를 담았다.

"그 집 할아버지가 시원한 카페 라테를 좋아하시거든요."

"제가 낼게요. 빵이랑 같이 해서 모두 얼마인가요?"

"옥수수 식빵만 계산해 줘요. 커피는 이웃 서비스니까. 실례지만 젊은 친구는.."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전 유호라고 해요. 연희가 다니는 대학교 졸업생입니다. 연희는 같은 과 후배였어요."

"그렇군요. 연희가 혼자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다는 건 모르겠군요. 불편하면 제가 대신 전해드릴.."

"수고 하세요!"

청년은 커피가 담긴 캐리어와 빵 봉투를 덜레덜레 들고 빠른 걸음으로 꽃집을 찾아갔다. 조금 둔해보이지만 신뢰가 느껴지는 그의 언행이 시현의 마음에 들었다. 그날 장사를 마칠 때까지 그 청년은 거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 가게를 정리한 시현은 어떤 기대감을 품고 꽃집 주변으로 잦아 들었다. 살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낮에 보았던 청년이 열심히 할아버지의 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밥짓는 냄새가 나는 걸 보아 연희가 주방에 있는 것 같다. '미안해요.'시현은 꽃집 내부의 사각을 골라 자신의 몸을 숨겼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아 말 그대로 귀신도 알아채지 못할 은신법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할아버지가 잠들자 청년은 연희의 손을 잡았다.

"혼자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연희는 뭐라 말을 하려했지만 왈칵 울음이 쏟아져 청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고, 청년은 말없이 연희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시현은 가슴에 차오르는 안도감을 느끼며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침묵과 함께 꽃집을 뒤로 했다.

훈훈한 기분으로 가게로 돌아가던 시현은 순간 예리한 기색을 느꼈다. 바로 공격법을 취할 만큼 시현은 무르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틀며 기척이 실린 쪽을 바라볼 뿐. 친구의 치과의가 사복 차림으로 손을 뻗은 상태였다. 공격을 흘려버린 시현은 검지를 뻗어 친구의 한쪽 눈 앞에 갔다 대었다.

"장난을 건게 다행이었어. 진짜였다면 네 눈은 두개 다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시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역시 대단해."

"무슨 일이야."

"꽃집에서 네가 숨어있는 걸 봤어. 여전히 다른 사람 일엔 관심이 많은 걸."

"너야말로."

"정말로 본가에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까?"

친구의 존댓말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빈정대는 건 아니었지만 진정 시현을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시현 나이 열 네살. 몸 담고 있는 무술 조직의 총재로 선출된 그 때. 같이 훈련받은 동기로서, 위엄과 관용의 조화를 이룬 어린 후계자 시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 해야 정확한 걸까. 시현은 몸을 홱 돌렸다. 싸늘한 한 마디를 남기고 걸음을 내딛을 뿐.

"지금의 난 제빵사일 뿐이야. 네가 치과 의사인 것처럼. 다른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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